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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교실 게시판입니다.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D. Shostakovich)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19.05.29 조회수 129

 

 

 

 

 

“지금도 나는 자문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이야기는 하나의 초상화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된다. “나는 이제 노인이 되었다. 책상에 앉아 그걸 계속 바라본다. 그것은 쿠스토디예프와 그에게 가해졌던 고난을 회상시켜준다.”(97면)



“나는 교향곡에 대한 주석이 교향곡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질려버렸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감한 언어의 홍수다. 이런 것은 정말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다. 필요한 것은 과감한 말이 아니라 과감한 음악이다. 이는 음표 대신에 도표를 사용하라는 의미의 과감함이 아니라 진실하기 때문에 과감하다는 뜻이다. 작곡가가 자기 사상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음악, 자기 나라 및 외국의 최대한 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그 음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며 그럼으로써 자기 나라와 국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음악. 내가 보는 한 음악을 작곡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란 그런 것이다.”(447~48면)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D. Shostakovich)


1906년 9월 25일, 화학 연구원인 아버지 볼레슬라보비치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코쿨리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음악과 문화를 진정으로 사랑한 가족으로부터 뛰어난 음감과 기억력을 물려받았으며, 글라주노프 같은 훌륭한 스승, 메이예르홀트 같은 좋은 후원자, 솔레르틴스키 같은 절친한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권력자와 그의 하수인들의 공포정치는 작곡가 일상의 중추를 무너뜨렸다. 절망 속에서도 러시아 휴머니즘의 본연을 찾고자 했던 그는 교향곡 열다섯 편, 오페라 세 편, 현악 사중주 열다섯 편을 비롯한 백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1975년 8월 9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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