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바빌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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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17.06.20 | 조회수 | 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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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프는 러시아 농무성 응용식물분류국에서 일하면서 1916년 첫 탐험으로 이란 및 파미르 지역에서 밀, 보리, 호밀 근연야생종의 탐색, 수집을 실시하였습니다. 1921년(34세)에는 응용식물분류 및 육종과 실장에서 패트로그라드 소재 응용식물 분류국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1924년(37세)에 응용식물 분류국이 응용식물 및 신작물연구소로 확대 개편되어 소장으로 지명되었습니다. 1926년-1927년에 걸쳐 지중해연안 그리고 아프리카 아비시니아 고원 지역을, 1929년에는 중국·일본·한국을, 1930년에는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를, 1932년-1933년에 걸쳐 캐나다, 미국, 쿠바, 멕시코,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등을 탐험하였습니다. 바빌로프는 세계 각지의 재배식물 및 근연 야생종을 수집, 연구하여 “하나의 종에서 관찰된 특성은 다른 종에서도 비슷한 특성을 보이며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속 일수록 그 유전적 변이의 유사도가 크다”라는 “유전변이의 상동계열의 법칙(1920)”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재배식물은 커다란 분류군에서 순차적으로 작은 군으로 다시 유전적 변이의 구성별로 세분하고 그 결과에서 재배식물의 변이형의 분포지도를 작성하는 “식물지리적 미분법”을 확립하였습니다. 또한 다양한 변이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을 종과 변종의 기원중심지로 하여 “중심지에는 우성형질을 가진 기원식물이, 그로부터 떨어진 원격지에는 열성형질을 가진 변이계통 식물이 많다”라는 “ 재배식물의 기원중심지(1926)”를 발표 재배식물의 발상지를 7대 중심지(1940)로 나누었습니다. 1930년대 대기근이 닥치자 스탈린은 바빌로프를 소련 인민의 고통을 외면한 채 세계 유람이나 다닌 부르주아 반동, 소련의 농업을 고의로 망쳐먹은 간첩협의로 투옥하였습니다. 총살형까지 선고받은 바빌로프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탄원으로 죽음을 면하였으나, 수용소에 갇혀 지내다가 1943년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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