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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교실 게시판입니다.
부르주아의 시대 근대의 발명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0.11.02 조회수 57

 

1. 현대 도시의 발명, 모던 라이프

질서정연한 고풍스러운 건물들, 시원하게 뚫린 대로, 파리의 색채를 더해주는 아름다운 공원과 분수…… ‘파리’ 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모두 19세기에 발명된 것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악취와 오물로 뒤덮인 최악의 도시 파리가 오스만의 대대적인 도시 계획을 통해 지금의 파리로 변신한 현장으로 가보자.

2. 부자의 취향, 럭셔리란 무엇인가?

복고풍이 강타한 19세기, 당시 부르주아들이 열광한 가구들은 ‘짝퉁’이었다. 이들은 거실에는 장중한 루이 14세식 가구를 들이고, 살롱에는 우아한 루이 16세식 가구로 채웠다. ‘럭셔리’해 보이는 ‘짝퉁’ 가구로 집 안을 꾸미는 현대인의 모습은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근대의 예배당, 기차

19세기인들에게 기차역은 ‘모던’한 신전이었다. 굳이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기차역은 그 자체로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기차 산업의 발달로 부르주아들은 주말이면 한껏 차려입고 파리 근교로 달려갔다. 여행이 여가 문화의 대명사가 된 것은 이때부터다.

4. 머나먼 극동, 자포니즘

‘자포니즘’이라 통칭되는 일본풍에 19세기 유럽인들이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휘슬러, 고흐, 마네, 모네 등 수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일본이라는 생경한 문화에 푹 빠져 있던 당시 유럽인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5. 소비의 탄생, 백화점

초창기 백화점을 만든 이들은 마케팅의 귀재들이었다. 우아한 건물에 가득 들어찬 상품들과 통신 판매, 가격 정찰제 등 지금과 다를 바 없는 고객 중심 서비스는 19세기인들을 매혹시켰다. 이들은 옷, 가구, 커튼, 식기에 이르기까지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매 시즌 ‘트렌드’를 개발하고 VIP를 위한 특별 카탈로그를 발행해 고객들을 유혹했다. 요즘은 진귀한 자료가 되어버린 19세기 백화점 카탈로그들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엿본다.

6. 신세기 유토피아, 만국박람회

20세기의 시작을 알린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가득한 유토피아였다. 엑스레이, 천체망원경, 전기 자동차 등이 첫선을 보였으며 전시관 사이에 무빙워크가 설치되고 테마파크와 아쿠아리움 등 다채로운 볼거리로 가득한 그 현장으로 안내한다.

7. 빛과 어둠의 맛, 미식

19세기 부르주아들에게 레스토랑은 단순히 식사하는 곳이 아니라 사교의 장이었다. ‘미식’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19세기판 ‘미슐랭 가이드’가 출간되는 등 식도락은 고급 취미 생활로 자리 잡았다. 또한 통조림, 병조림, 마가린, 사카린 등이 시중에 유통되면서 서민들의 음식 문화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8. 인상파, 여자를 그리다

마네, 르누아르, 드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메리 로랑 같은 아름다운 여인들은 실은 당대 권력자나 부르주아들의 정부였다. 19세기 서비스업에 여성들이 대거 종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신한 여자, 일하는 여자, 몸 파는 여자들이 등장하던 그때 그 여인들을 만나보자.

9. “예술을 개혁하라”, 아르누보

‘짝퉁’ 취향을 넘어 새로운 대중의 예술을 탄생시키고자 고군분투한 일련의 작가들, 통칭 아르누보라고 부르는 이 예술운동의 중심에 에밀 갈레가 있었다. ‘디자인’이라는 용어조차 없던 19세기 말, 산업 속에 예술을 이식시키고자 했던 아르누보의 정신을 되새겨본다.

10. 19세기의 종언, 카몽도

프랑스계 유대인인 카몽도 가문의 흥망성쇠를 통해 ‘연대와 우애’라는 가치가 사라진 유럽의 사회상을 살핀다. 카몽도 가문은 평생 모은 프랑스의 문화재를 조건 없이 나라에 기증했고, 그들의 자식은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그들을 버렸고, 결국 카몽도 가문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고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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