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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교실 게시판입니다.
1963년 카세트 테이프의 발명 --- 루 오텐스(Lou Ottens)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1.03.12 조회수 99

 

인터넷을 떠돌던 ‘나이 테스트’가 있다. 카세트테이프와 연필이 등장하는 사진을 보고 두 물건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나이를 충분히 먹었다는 얘기다. 이 글을 읽을 젊은 세대를 위해 답을 말하자면,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카세트에서 테이프가 늘어져 밖으로 나올 경우 (6각형의) 연필을 구멍에 넣어서 돌려 감곤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 세계인들이 그 방법을 사용했다.

사람들이 공유한 추억은 그뿐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사람들은 LP판이나 라디오, 혹은 음악 테이프에서 마음에 드는 곡들을 골라 ‘믹스테이프(mixtape)’라는 걸 만들어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곤 했다. 물론 인기곡들만 모아 만든 믹스테이프를 길거리에서 파는 경우도 흔했고, 한국에서는 어떤 곡들이 테이프에 올라가느냐가 인기의 척도가 되면서 ‘길보드 차트’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처럼 한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현상은 모두 1963년 세상에 등장한 카세트테이프 때문에 가능했다. 이걸 만들어낸 네덜란드의 엔지니어 루 오텐스(Lou Ottens·94)가 지난 주말 세상을 떠났다. 오텐스는 20대 초의 나이에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테크기업인 필립스에 입사한 후 8년 만에 신제품 개발을 총책임지는 자리에 오를 만큼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세계 최초로 휴대가 가능한 테이프 녹음기를 만들어 크게 성공시킨 오텐스가 카세트테이프를 개발하기로 한 것은 당시에 사용하던 녹음 테이프는 커다란 릴에 감겨 있어서 들고 다니기 힘들었을 뿐 아니라, 테이프를 릴에서 풀어서 꺼내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장 등의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탄생한 카세트테이프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경쟁자를 만났다. 거의 동시에 세상에 나온 에이트(8) 트랙 카세트였다. 카세트테이프의 두 배 정도 되는 에이트 트랙은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에서 제법 인기를 끌었지만 결국 오텐스가 개발한 카세트테이프에 밀려 사라져버렸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오텐스가 주도한 필립스의 개발과 영리한 상업화 전략 때문이다. 오텐스는 제품을 개발하기 전에 제품의 외양을 결정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다양한 크기의 목업(mockup)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생각할 모양과 크기를 고려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비밀리에 아이폰을 개발할 때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 방법은 지금은 일반화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성능을 최우선시하기 쉬운 보통의 엔지니어들과는 다른 생각을 한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물건만 파는 것보다 업계의 표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당시 전자제품으로 떠오르던 일본 기업들에 돈을 받지 않고 라이선스를 제공하면서 에이트 트랙과의 포맷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카세트테이프의 진정한 매력은 녹음 기능에 있었다고 말한다. 에이트 트랙은 음반사가 미리 녹음한 음악을 듣는 기능만을 강조해서 마케팅을 했지만, 오텐스의 카세트테이프는 음악이 담긴 테이프와 공(空)테이프, 두 종류를 팔면서 사용자들이 직접 녹음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마케팅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게 들리겠지만, 카세트테이프의 녹음 기능은 20세기 중반 이후로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혁명적인 변화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은 음악 라디오를 들을 때 공테이프를 준비해놓고 기다리다가 원하는 곡이 나오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 때문에 음반이 팔리지 않는다는 음반사의 항의 때문에 DJ들은 곡이 시작한 후에 짧은 멘트를 넣는 식으로 녹음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음반사가 만들어준 LP판이나 테이프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곡들만 모아서 테이프를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은 사용자가 음악 소비의 주도권을 음반사로부터 가져오는 전기가 되었다.

카세트테이프가 바꾼 사용자 행동 변화는 음악이 디지털화된 후에도 이어졌다. 사람들은 CD를 복사해서 자신만의 CD를 구웠고, 불법 다운로드한 곡을 MP3 플레이어에 담았고, 아이튠즈에서 음반이 아닌 원하는 곡만 골라서 샀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듣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즐긴다. 이 모든 소비 방식의 근원은 결국 오텐스의 카세트테이프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텐스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신이 젊은 시절에 개발한 카세트테이프가 다시 인기를 끄는 모습을 봤다. 아날로그를 모르고 자란 디지털 세대가 LP판과 필름 카메라 등의 아날로그 제품에 흠뻑 빠지면서 로파이(lo-fi) 음악이 인기를 끌다가 결국 카세트테이프가 재등장하게 된 것이다. 음반업계에서는 2020년을 카세트테이프가 다시 인기를 끌게 된 해로 기억한다. 이제 레이디 가가 같은 유명 가수들은 자신의 곡을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판다. 레이디 가가의 ‘크로마티카’ 앨범의 경우 미국에서 디지털로 다운로드할 경우 10달러가 조금 넘지만, LP판은 20달러, 카세트테이프 포맷은 가장 비싼 30달러에 팔린다. 하지만 오텐스는 어쩌면 이런 레트로 열풍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오텐스는 카세트테이프가 세상을 지배하던 1970년대에 CD 개발을 주도하면서 결국 90년대에 카세트테이프를 퇴역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신의 시간을 다하면 사라지는 거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가 남긴 말이다.

 


[박상현의 디지털 읽기] 그냥 듣는 대신 녹음… 카세트테이프 발명이 음악 소비 혁명으로


조선일보. 2021. 03. 12. 03 : 00 오피니언. 인터넷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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