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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과 화산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1.12.16 조회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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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

 

 

   1518년에 스페인의 쿠바 총독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465-1524)는 멕시코를 정복하기 위해서 에르난 코르테스(Herman Cortez, 1485-1547)라는 젊은 스페인 장군을 파견했다. 코르테스는 6백에서 7백 명에 이르는 군대와 18필의 말고 수문(數門)의 대포라는 작은 병력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수천의 야만인을 상대하는 데는 이러한 작은 병력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설마 조직된 민족이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르테스는 151811월에 7척의 범선으로 편성된 함대를 이끌고 출범하였다. 많은 모험 끝에 대륙에 한 항구를 건설하고 베라크루스(Vera Cruz)라고 이름 지었다. 항구가 완성되자 퇴각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배를 모두 부숴 버렸다. 이것을 보고 부하들은 정복하느냐 죽느냐, 어느 쪽이건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주민들은 비록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포나 총에 대항에서 오랫동안 싸울 수는 없었다. 1521년에 메히코(Mexico)라고 불리는 그들의 수도가 코르테스의 손에 함락되었고 이어 전국이 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메히코는 멕시코의 현지 발음)   

   정복자는 옛 멕시코의 폐허 위에 즉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도록 명령하였고 이곳을 요새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태는 일변해서 그에게는 불리한 방향으로 치달았다. 총포와 탄약이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었다. 총독 벨라스케스는 코르테스의 성공을 시기할 뿐 아니라 그에게 맹렬한 적대감을 품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탐험을 감독하는 본국 스페인의 식민 상도 역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이들 두 사람의 권력자들은 코르테스가 많은 것들, 특히 총포와 화약이 부족하여 곤경에 처해있는 것을 모르는 척 내버려 두기로 하였다.

  코르테스는 당황하기는 했으나 어떻게 해서든지 이 사태를 타개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만약 스페인으로부터 총포와 화약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된다면 멕시코에서 이것을 조달하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려운 과제였다. 신세계에서 화약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이었으며 더욱이 유럽인들이 대포나 탄환의 일부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는 쇠는 그 당시 멕시코에서는 발견되지도 않았었다.

   코르테스는 절망하지 않았다. 비록 대포를 만드는 데 쇠를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청동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주민이 구리와 주석으로 청동을 만들고 또 이것을 가지고 몇 가지 물건을 만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멕시코에서는 구리가 풍부하게 산출되었다. 주석도 여기에서는 자연적으로 산출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원주민들이 주석을 사용하여 소량의 청동을 만들고 있었을 뿐 아니라 화폐에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화폐는 주석으로 만든 판을 T자형으로 자른 것이었다) 코르테스가 창은 결과 타스코(Taxco)라고 불리는 지방에 주석의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여기에 광산을 만들고 주물공장을 세웠다. 구리와 주석을 녹여 섞어서 청동을 만들고 녹은 청동을 틀에 부어 넣어서 대포와 통을 만들었다.

   이 공장에서 모두 30문의 대포가 만들어졌으며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대포와 합치면 실제로 가진 대포의 수는 어지간히 충분하게 되었다.

   대포 탄환의 보급은 코르테스에게 있어서는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스페인인은 일반적으로 쇠로 된 탄환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당시의 다른 나라들의 포수(砲手)와 마찬가지로 필요할 때는 돌로 만든 탄환도 썼다. 쇠가 없으면 물론 돌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코르테스는 이 땅에서 얻어지는 석재(石材)로부터 많은 포탄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이렇게 되자 어쨌든 필요한 것은 화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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