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동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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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1.12.28 | 조회수 |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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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동굴> 이탈리아어로 말하면 <크로타 델 카네(crota del cane)>는 나폴리시 근처의 아냐노호반에 있다. 이 호수는 주위가 약 3km이고, 사화산(死火山)의 화구에 물이 고여서 된 것이다. 동굴은 아주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이름이 지어졌고 또 <꼭 보아야 할 명소>로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실제로 몇백 년에 걸쳐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왔다. 이제부터 드는 인용문은 모두 18세기에 쓰인 것이다. 이때 <독기>라거나 <증기>라고 하는 말들은 모두 오늘날 우리들이 <가스> <기체>라고 부른 것을 의미하고 있다. 어떤 사람의 기술에 의하면 이 동굴의 밑바닥으로부터
『희박하여 붙잡기 어렵고 미적지근한 독기가 위로 피어올라 온다. 예리한 눈이라면 충분히 보일 것이다. 독기는 이곳저곳에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끓어오르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연속한 흐름이 되어 동굴 밑바닥 전면을 덮는다. 보통의 증기와 전혀 다르며 연기처럼 공중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어오른 다음 곧 지면에 가라앉아 내려 약 30cm의 높이에서 멈추어 있다. 그러므로 동물의 머리가 이 높이보다 높게 치켜져 있는 한 그 속에 서 있어도 곤란할 것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많은 불행한 동물들은 그렇게 있게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들을 생 제르맹(Saint Germain)의 온천에 안내한 남자는 이 동굴을 지키는 사람이기도 했는데 이 남자는 우리들이 마차에 태워 데리고 온 개를 보고는 이것을 붙잡아서 이상한 실험의 재료로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자기가 기르고 있던 개를 붙잡으려고 달려갔다. 개를 이끌고 돌아오자 그는 몸을 구부리고 무릎을 꿇으면서 동굴에 들어가서 허리를 구부렸다. 다음에 개의 네발을 붙잡아 거꾸로 늘어뜨려서 얼마 동안 그대로 있었다. 곧 개는 짖으면서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이었다. 이윽고 눈을 부릅뜨고 혀를 늘어뜨리고 힘이 빠지자 끝내 기절해 버렸다. 죽은 것처럼 되었을 때 남자는 개를 그곳에서 20보 정도 떨어진 아냐노 호수 속에 집어 던졌다. 개는 곧 의식을 회복하여 물에서 나오자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쳐 버렸다. 아마 실험동물이 되는 것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개 임자에게 동굴에서 끌어낸 반쯤 죽은 개가 살아난 것은 이 호수의 물의 효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가를 물었다. 그는 딱 잘라 대답했다. -- 물론 이 물만이 개가 완전하게 죽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저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안내인의 개는 동굴 속에서 어떤 지경에 이르는가를 알고 있었으므로 기꺼이 그 속에 들어갈 리는 없었다. 억지로 끌어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구경꾼이 기르고 있는 개라고 하면 아무것도 모르고서 기꺼이 주인의 뒤를 따라 들어갔을 것이다. 동굴 속에서는 인간이라면 아무 변화도 없이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으나 개의 경우에는 곧 발밑의 땅바닥에 넘어져서 구경꾼을 놀라게 했을 것이 틀림없다. 개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생물을 사용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유명한 영국의 저술가 에디슨은 살무사를 동굴 속에 넣었을 때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살무사를 동굴 속에 첫 번째 넣었을 때는 9분간 견디고 두 번째는 10분을 견디었다. 첫 실험 뒤에 살무사를 밖으로 끄집어냈을 때 살무사는 허파 가득히 다량의 공기를 들이마셨으므로 평상시의 거의 2배의 크기로 부풀었다. 두 번째의 실험에서 1분간 더 오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이 모아둔 공기 덕분이었으리라.』
프랑스왕 샤를 8세(Charles Ⅷ, 1470-98)가 1494년 나폴리를 공략했을 때 이 동굴도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어느 날 왕은 당나귀를 가지고 실험하기로 했다. 당나귀는 동굴 속에 끌려 들어갔고 억지로 밑바닥에 뉘어졌다. 곧 당나귀는 개와 같은 증상을 일으켰고 얼마 안 가서 죽었다. 이 동굴은 또한 몇 명의 인간의 죽음의 장소가 되었다. 예를 들어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두 사람의 노예를 동굴 속에 처넣어서 죽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노예를 그 속에 넣고 밑바닥에 사슬로 묶었더니 거의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훨씬 뒤에 나폴리 총독 톨레도(Toledo)의 돈 페드로(Don Pedro)가 동굴에 두 사형수를 가두어 넣었더니 모두 죽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16세기에는 포로가 된 터키인이 나폴리 총독의 명령에 따라 동굴의 밑바닥에 내 뒹굴어졌다. 이것은 인간이 얼마만큼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 있는가를 조사하는 실험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머리를 <증기> 밑으로 들어가게 하여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므로 불운의 터키인을 밖으로 끌어낸 다음 근처의 호수에 몇 번이고 던져 넣어졌으나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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