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은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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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2.01.11 | 조회수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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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라부아지에
앙투안로랑 드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de Lavoisier, 1743-94)는 부유한 프랑스인의 아들로 1743년에 태어났다. 젊었을 때부터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나타냈으며 특히 과학연구에 흥미를 느꼈다. 그 당시에는 여러 가지 직업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가고 있었다. 라부아지에는 부자였고 필요한 재료를 사서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었으므로 곧 당시의 가장 뛰어난 과학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1767년에 프랑스의 지질학적 측량을 한 다음 25세라는 젊은 나이로 특권적인 프랑스 왕립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뽑혔다. 그가 그 이후 이루어 놓은 업적은 이러한 이례적(異例的)인 발탁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때까지 믿어지고 있었던 연소의 이론 <플로지스톤설>이 틀렸다는 것을 밝혔고 정밀한 천칭(天秤)을 사용하는 것이 모든 과학연구에 꼭 필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당시 국가의 지배자와의 관계를 다루려고 하므로 정부를 위해서 한 업적만을 들기로 하겠다. 1775년에 그는 정부의 화약공장의 관리자로 임명되어 화약위원회의 위원으로서 화약의 폭발력을 크게 하는 수단을 발명했다. 또한 미터법의 확립과 농업에의 과학의 응용 면에서 국가에 크게 공헌했다. 혁명이 일어났을 때 혁명지도자는 처음부터 그의 도움을 구해서 쉽게 위조할 수 없는 지폐인 <아시냐지폐>의 제조에 관해서 라부아지에의 의견을 들었다.
세금징수인 조합원 라부아지에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에서는 관세나 담뱃세, 소금세, 일부의 주류(酒類)에 대한 세금 등을 거두는 일을 <세금징수인 조합>이라는 부유한 금융가의 집단이 청부를 맡고 있었다. 그들은 국가에 매년 일정액의 돈을 지불하는 대신 거둔 세금을 전부 자기들이 나누어 가졌다. 1768년에 라부아지에는 세금징수인 조합의 일원이 되었고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곧 경영 면에서 탁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곧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어떤 시대이건, 나라이건 세금을 거둬들이는 사람들이 인기가 있었던 일은 없었으나 프랑스의 세금징수인 조합은 특히 미움을 받았다. 그들의 중요한 관심은 거대한 이익을 얻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단속을 극도로 엄하게 하였고, 탈세나 밀수, 특히 높은 세율을 부과하고 있는 소금의 밀수에는 매우 엄한 형벌을 주도록 하였다. 그들의 재무관리를 둘러싸고 많은 추문이 있었고, 특히 세금징수인 조합원이 고위층이나 유력자들에게 불법적인 지출을 한 것이나 왕이나 왕의 애인들은 해마다 그들로부터 많은 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혁명으로부터 2년이 지난 1791년에 국민의회가 징수인 조합의 폐지를 포고하고 이루 2년의 여유를 주어 조합재정을 청산하여 보고하라고 명령했을 때 놀란 프랑스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세금징수 인들은 이 작업을 매우 느리게 진행해 주어진 2년이 다 지나도 청산되지 않았다. 이 불필요한 지연과 또 다른 이유도 있었으므로 그들에 대한 비난은 들끓어서 1793년 11월에 한 의원이 <이 흡혈귀들>의 체포를 요구했다. 국민의회는 관례에 따라 라부아지에를 포함한 모든 세금징수 인들의 체포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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