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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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2.01.28 | 조회수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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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피에의 열기구
몽골피에(Mongolfier) 가(家)의 두 형제 조제프(1740-1810)와 자크(1745-1791)는 프랑스 론강변의 고을 아노내에서 커다란 제지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둘 다 비행술의 연구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커다란 종이 자루에 증기를 채워 「구름처럼 가볍게 하면 구름과 같이 공중에 뜨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1783년 6월 5일에 형제는 이 착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실험을 했다. 많은 사람이 이 실험을 구경하기 위해서 모여들었다. 지름이 12m나 되는 종이 자루를 긴 기둥 꼭대기에 묶어 매고 자루 아래에 열린 주둥이 바로 밑에 밀짚과 땔나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땔나무의 산더미에 불을 붙여지자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라서 자루에 들어갔다. 곧 자루는 팽팽하게 부풀어 놔서 거대한 공이 되었다. 이 공을 떼어 놓았더니 둥실둥실 하늘로 올라가 10분도 채 안 가서 약 2,000m의 높이에 도달했다. 그러나 즉시 공은 내려오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포도밭에 착륙했으나 포도에는 아무 해도 끼치지 않았다.
샤를의 수소 기구
당시 유명한 프랑스 과학자 자크 샤를(Jacques Charles, 1746-1823) 교수(기체의 온도와 부피에 관한 샤를의 법칙으로 이름을 남겼다.)는 이 굉장한 실험의 소문을 듣고 자기도 같은 실험을 되풀이해 보겠다고 작정했다. 그러나 샤를의 계획은 몽골피에 형제가 했던 것과는 중요한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는 영국의 과학자 헨리 캐번디시(Henry Cavendish, 1731-1810)rk 얼마 전 1766년에 발견한 새로운 기체 – 지금은 수소라 불린다. - 가 공기보다 훨씬 가볍고 그 무게의 1/10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1/14.5의 무게) 그리하여 샤를은 몽골피에 형제가 사용한 뜨거운 공기와 연기 대신에 수소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 당시 수소는 실험실 내에서 쇠를 묽은 염산에 녹여서 만들었다. 샤를은 그의 계획을 발표하고 필요한 자재를 사기 위해서 공공기부금을 모집했다. 그는 로베르라는 두 형제의 도움을 받아서 비단으로 지름 약 4m의 커다란 공을 만들어서 안쪽에 고무를 발라 기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했다. 수소를 만드는데 철 액 500kg과 황산 250kg을 사용하였다. 특별히 만든 그릇 속에 철과 황산을 넣고 그릇에서 파이프를 연결해서 세차게 솟아오르는 수소를 비단 자루 속에 집어넣었다. 이 비단 자루는 <발롱(ballon)> 또는 <발룬>으로 불렸다. 어느 것이나 <커다란 자루>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물론 이런 실험은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끌었다. 수소를 가득 채우는 작업은 8월 23일에 시작했으나 모여드는 군중들은 날마다 더 늘어났으므로 끝내 기구를 3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장 드 마르스라는 광장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구는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그곳에 운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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