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서 나온 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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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2.02.03 | 조회수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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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가스가 발견되기 이전부터 큰 도시의 특별히 중요한 거리에 적당한 등불을 가설하여 조명하려고 하는 노력이 되풀이되었다. 예컨대 14세기 초에 런던시장이 핼로타이드나 캔들바스 사이에서는 겨울에 매일 밤 집 주인이 가로에 등을 매달라고 명령한 기록이 있다. 이 세기 무렵에는 경험상 야간에 가로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였다. 도둑이나 그 밖의 다른 나쁜 궁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두운 가로가 매우 좋은 사냥터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기는 했지만. 1668년과 그 수년 뒤에 또 한 번 런던시민들은 이 낡은 명령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했다. 명령은 널리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또는 아마 등이 충분한 빛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1716년이 되어서 시의회가 뒷골목이거나, 큰 거리를 막론하고 길가에 있는 집주인들은 모두 매일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한 개 또는 그 이상의 불을 켠 등을 매달아야 한다고 명령하고 이에 위반하면 1실링(당시로써는 매우 큰 금액)의 벌금을 물게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집주인은 이 명령에 따르기는 했지만, 일부러 램프를 켜지 않고 커튼을 드리우지 않은 채 방안의 기름 램프의 빛이 길가를 비추도록 하는 데 그쳤다. 수년 후에 시 당국은 비로소 중요한 길가의 몇 군데에 기름 램프를 세워서 조명했다. 그러나 이들 램프의 빛은 오늘날의 가로등과 비교하면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두웠다. 그러므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길을 밝혀주는 소년을 고용해서 불을 켠 초롱을 들고 앞을 비추며 걷도록 했다.
클레이턴, 타는 가스를 발견하다
가스를 등불에 사용할 수 있다는 재미있는 발견은 1739년에 이루어졌다. 이해 겨울에 존 클레이턴이라는 목사가 랭커셔의 와이건에서 3km 떨어진 길가의 시궁창 물이 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목격했다. 「이 물은 브랜디처럼 탔다.」라고 그는 쓰고 있으며 불꽃은 그 위에서 달걀을 삶을 만큼 센 것이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시궁창 물에 특별한 종류의 물질이 섞여 있다고 생각했으나 목사 클레이턴은 이 사람들보다 더 지식이 많았으므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시궁창의 물을 마르게 하고 밑바닥의 지면을 파 내려갔다. 드디어 그의 말에 의하면 「지면에서 어떤 기(氣)가 솟아 나왔다.」 이 기는 지면에 파묻혀 있는 석탄층에서 방출되는 가스였다. 그는 이 가스를 많은 소의 방광에 넣었다고 한다. 친구들을 흥겹게 해주려는 생각이 나면 이 방광 중에서 한 개를 집어 들고 바늘로 구멍을 뚫고 촛불 곁에서 그것을 천천히 눌렀다. 구멍에서 밀려 나온 가스에 불이 붙어 「방광 속에서 가스가 남김없이 밀려 나올」 때까지 계속 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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