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자들 2 --- 자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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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22.05.11 | 조회수 | 20 |
발견자들 2 자연세계를 발견하고 인류를 발전시킨 탐구와 창조의 역사대니얼 J. 부어스틴 저 | EBS BOOKS | 2022년 03월 20일
목차목차 독자에게 전하는 글 3편 자연 9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 38. ‘역설의 안개’ 속으로 39. 위대한 육안 관측자 40. 고난과 놀라움의 시각 41. 집중포화에 휩싸이다 42. 새로운 미시의 세계 43. 중국의 갈릴레오 10부 우리의 내부 세계 44. 미래의 길을 알려 준 미친 예언자 45. 갈레노스의 독재 46. 동물에서 인간으로 47. 보이지 않는 체내의 흐름 48. 질에서 양으로 옮겨 가다 49. ‘자연의 현미경’ 11부 과학의 대중화 50. 과학자들의 의회 51. 경험에서 실험으로 52. 신이 말하기를, “뉴턴이여 있으라!” 53. 우선권이 목표가 되다 12부 만물을 분류하다 54. 관찰의 학습 55. 종의 발명 56. 표본의 탐색 57. 과거 시기의 연장 58.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59. 진화로 향하는 길 참고 문헌 감사의 말 찾아보기 저자에 관하여 저 : 대니얼 J. 부어스틴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인 대니얼 J. 부어스틴은 미국 의회 도서관 명예관장이었으며 1979년부터 1987년까지 의회 도서관 운영 책임을 맡았다. 이전에는 미국 국립 역사·기술 박물관 관장과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수석 역사 연구원을 역임했다. 그는 또한 시카고 대학에서 ‘프레스턴 및 스털링 모턴 석좌교수’로 25년 동안 역사학 강의를 했다. 부어스틴은 미국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에서 태어나 오클라호마주에서 자랐고, 하버드 대학에서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했으며, 예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또한 옥스퍼드 대학 베일리얼 칼리지(Balliol College)의 로즈 장학생으로 졸업 시험에서 ‘두 과목 최우등생’의 명예를 얻었고, 런던의 이너 템플(Inner Temple) 변호사협회 회원 자격을 획득했으며,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변호사협회 회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소르본 대학 미국사 최초의 재직 교수와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미국사 교수를 비롯해 로마 대학, 교토 대학, 푸에르토리코 대학, 제네바 대학의 객원 교수로 활동하는 등 미국과 세계 전역에서 널리 강의를 해 왔다. 그는 책을 저술할 때마다 편집인 역할로 늘 도움을 주는 루스 프랭클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다. 부어스틴의 주요 저서로는 미국 문화의 특징을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밝혀내면서 미국 역사의 새롭고도 광범위한 관점을 담은 3부작이 대표적이다. 첫째는 밴크로프트 상(Bancroft Prize)을 받은 『미국인들: 식민지 경험The Americans: The Colonial Experience』(1958), 둘째는 프랜시스 파크먼 상(Francis Parkman Prize)을 받은 『미국인들: 국민적 경험The Americans: The National Experience』(1965)이며, 셋째는 역사학 분야의 퓰리처상과 ‘이달의 북 클럽(Book-of-the-Month Club)’의 주요 저서로 뽑힌 『미국인들: 민주적 경험The Americans: The Democratic Experience』(1973)이다. 그 외에도 미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로 채택된 『미합중국의 역사A History of the United States』(1980), 『창조자들The Creators』(1993), 『탐구자들The Seekers』(1998) 등이 있으며, 그의 저서들은 모두 전 세계 20개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책 속으로 지구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고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관념은 무엇보다 명백했다. 근대의 서구 과학은 이 상식의 원칙을 부정하면서 시작되었다. 과학의 탁월한 역설의 탄생이며 원형이 된 이런 부정은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아담과 이브가 벌거벗은 사실을 깨닫고 옷을 입었다는 것이 바로 지식이었던 것처럼, 지구가 중심이 아니거나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런 단순한 역설을 묵인한 죄책감으로 인간은 지각의 벌거벗음을 깨닫게 되었다. 일상생활의 기반이 되는 상식은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하는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복잡한 기구와 정교한 계산을 만들어 내는 과학 지식이 의심할 여지없는 진리를 밝혀냈을 때,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사물이 되지는 않았다. 우주에 관한 대칭형의 모형은 하늘을 육안에 의한 관찰과 계산에 맞게 정확하게 설명한 이론이었다. 그 모형의 단순성과 대칭성과 상식은 철학과 신학과 종교의 무수한 원칙들을 확인해 주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또한 실제로 과학적 설명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모형은 유용한 사실에 적합했고, 거의 만족할 정도의 예측을 할 수 있는 방식이었으며, 또한 나머지 자연현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당시 하늘에 관해 알려진 잡다한 사실들을 대신하여 편리하고 논리 정연한 모형으로 천문학자의 기억에 도움을 주었다. 더 나아가 아주 잘못된 지구중심설, 즉 ‘프톨레마이오스’ 모형은 비전문가의 머릿속에 명확한 모습을 제공하면서도 천문학자들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도움을 주었다. 육안을 통한 관측에서 기구의 도움을 받는 관측으로 바뀐 도약은 천체에 관한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전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망원경을 발명하기 시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움을 받지 않고 인간의 감각에 직접 의존하려는 믿음은 가장 깊고 널리 퍼진 편견 중의 하나였다. 현미경은 망원경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근대화의 선지자로서 유명한 영웅이 되었던 반면에, 현미경 세계의 선지자였던 훅과 레이우엔훅은 전문 과학의 신전에서 무시당했다고 볼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는 ‘과학’과 ‘종교’ 사이의 널리 알려진 싸움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지만, 훅과 레이우엔훅은 그렇지 못했다. ---「9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중에서 16세기의 유럽에서는 인간의 우주 탐구를 방해했던 것과 같은 상식과 민간 지식이 인간 자신에 대한 통찰과 인체의 탐구를 방해했다. 그러나 천문학과 달리 인체해부학은 누구나 어느 정도 직접 알고 있는 주제였다. 유럽에서 인체에 대한 지식은 성문화되어 있어서 영향력 있고 독점적이며 존경 받는 전문가에게 맡겨졌다. 1,500년 동안, 유럽 의사들의 인체에 관한 지식은 인체 자체에 근원을 두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고대 그리스 의사들의 기록에 의존했다. 말하자면 ‘지식’은 지식의 걸림돌이 되었다. 그 고전들은 존경 받는 방해물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내부 세계」중에서 “진리는 국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 개인을 통해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데카르트는 말했다. 갈릴레오, 베살리우스, 하비, 말피기 등이 나타난 세대는 서로 풍요롭게 하고 여러 곳에 있는 탐구자들을 위해 개인을 통해 발견된 진리들을 한데 모으는 새로운 학문의 토론장이 필요했다. 과학 사회는 각각 다른 지역어를 사용하는 과학자들의 의회가 되었다. 뉴턴의 시대가 되어서야 과학을 발전시키는 힘이 집중되고 절정에 이르렀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뉴턴의 시대는 이미 ‘수학의 길’을 가고 있었다. 과학을 다루는 새로운 모임들은 토론하고, 지지하고, 수정하며, 보급하려는 목적으로 관찰과 발견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있었다. 뉴턴은 런던의 왕립학회의 의장으로 지낸 25년 동안, 그 학회를 전례 없는 과학 홍보와 권력의 중심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우선권이라는 망령은 과학의 진보를 괴롭혔다. 가장 유명한 과학자들까지도 자신들의 발명에 관한 사실을 증명하기보다 권리를 주장하는 데 훨씬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과학의 대중화」중에서 박물학자들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동식물의 정확한 명명법이 필요했다. 그 전에 먼저, 동식물의 ‘종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공통된 이해가 있어야만 했다. 자연의 단위는 무엇일까? 선구적인 박물학자들은 ‘종 species’이란 개념을 만들어 냈을 때 모든 생물의 목록을 작성하기 위한 유용한 용어를 제공하게 되었다. 린네는 전례 없는 세계적인 표본 탐색 계획을 고취시켰다. 그의 업적은 수 세대에 걸쳐 표본을 탐색하는 사람들에게 과학 발전의 기여에 목숨을 걸게 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그들이 어렵게 얻은 발견물들이 더 이상 다락방이나 무의미한 ‘진기한 물건이 가득한 보관함’ 속에 묻혀 버리지는 않았다. 린네의 방식으로 새로 ‘확인된’ 온갖 동식물들은 전 세계의 체계적인 표본조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지구 전체와 지구의 동식물을 역사의 무대에 올려 근대 생물학의 전망을 여는 것은 뷔퐁에게 남겨진 일이었다. 뷔퐁 이후 지구에서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뷔퐁은 이미 종의 ‘신비’를 잠깐 들여다본 것이다. 『종의 기원』에 대한 초기의 적대적인 반응과 특히 새뮤얼 윌버포스 주교의 무식하고 경멸로 가득한 공격은 이제는 잘 알려진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 경멸은 순식간에 찬사로 바뀌었다. 『종의 기원』이 출판되고 10년도 안 되어, 케임브리지 대학의 자연과학의 우등 졸업 시험의 문제가 자연 속의 ‘지적 설계의 증거’를 묻는 대신에, 생존경쟁의 개념을 분석하는 문제로 바뀌었다. ---「12부 만물을 분류하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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