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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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22.06.02 | 조회수 | 17 |
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
피라미드에서 인공지능까지
목차 머리말 01 피라미드 가장 오래된 불가사의 건축물 02 시계 정밀한 시간 측정을 향한 긴 여정 03 인쇄술 동양과 서양의 인쇄술을 보는 시각 04 방적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일구다 05 증기기관 헤론의 증기기구에서 와트의 증기기관까지 06 열기구 몽골피에 형제와 비행의 발명 07 제분기 에번스와 제분업의 자동화 08 조면기 플랜테이션 경제의 주역 09 공작기계 모즐리와 정교한 엄마 기계의 탄생 10 백신 종두법에서 세균혁명으로 11 증기선 세계 최초의 상업용 증기선을 개발한 풀턴 12 수확기 농업 기계화를 이끈 최고의 발명품 13 고무 굿이어의 가황법과 인조고무의 탄생 14 재봉틀 가정에서 널리 사용된 최초의 기계 15 승강기 오티스 사의 최초 상표, 엘리베이터 16 전로 베세머와 강철의 대량생산 17 석유 현대 문명의 검은 피 18 전화 벨이 전화 발명가가 된 사연 19 백열등 전등 시스템을 구축한 에디슨 20 내연기관 가스 엔진에서 가솔린 엔진으로 21 라디오 무선전신에서 대중 방송으로 22 비행기 진정한 비행시대를 연 라이트 형제 23 화학비료 하버와 암모니아 합성법의 개발 24 인슐린 당뇨병 치료의 문을 연 밴팅 25 냉장고 왕실용 석빙고에서 대중용 냉장고까지 26 텔레비전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안방극장 27 테플론 원자탄, 프라이팬, 고어텍스의 공통분모 28 DDT 영욕의 역사를 가진 살충제 29 원자탄 인류 역사상 최악의 과학기술 드라마 30 컴퓨터 대형 컴퓨터에서 개인용 컴퓨터로 362 저 : 송성수 (宋成守) 서울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사논문은 테일러주의의 형성에 관한 것이고, 박사논문에서는 한국 철강산업의 기술능력 발전과정을 다루었다. 한국산업기술평가원(ITEP) 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연구위원, 부산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를 거쳤다.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같은 학교 대학원의 과학기술인문학 협동과정과 기술사업정책 전공에도 관여하고 있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부산대사업단 단장,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혁신학회 부회장과 한국과학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편저), 『과학기술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가』(편저), 『나는 과학자의 길을 갈 테야』(공저),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인다, 철강』, 『근현대 과학기술과 삶의 변화』(공저), 『과학기술과 문화가 만날 때』, 『한국의 과학문화와 시민사회』(공저), 『과학기술과 사회의 접점을 찾아서』, 『한국 기업의 기술혁신』, 『공학윤리의 쟁점』, 『연구윤리란 무엇인가』, 『기술혁신이란 무엇인가』, 『과학기술학의 세계』(공저), 『사람의 역사, 기술의 역사』, 『한 권으로 보는 인물과학사』, 『과학의 본성과 과학철학』, 『과학기술로 세상 바로 읽기』(공저), 『발명과 혁신으로 읽는 하루 10분 세계사』 등이 있다. 책 속으로 기술에 대한 의존도는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엄마가 두 살배기 아이에게 줄 빵을 어떻게 확보하는지 생각해 보자. 대충 다음과 같은 경로를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농부가 농기계와 화학비료를 써서 밀을 재배한다. 그 후 수확된 밀은 창고로 운송되고 제분회사가 그것을 구입해 거대한 롤러를 사용하여 가루로 빻을 것이다. 밀가루는 다시 제빵공장으로 보내져 다양한 기계에 의해 빵으로 만들어진다. 빵이 슈퍼나 마트에 배달되면 거기서 비로소 엄마가 빵을 살 수 있게 된다. 빵을 사러 갈 때 자동차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엄마가 아이에게 줄 빵을 구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기술이 매개된다. --- p.3-4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목판 인쇄술이 우수한 기술로 자리 잡았으며 활판 인쇄술의 사용에 대한 동기부여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왜 인쇄술이 발전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존재한다. 이 질문은 기술이 각 사회의 구체적인 맥락과 무관하게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는 잘못된 가정에 입각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질문은 서구의 기술 유형이 모든 기술의 보편적인 잣대로 기능한다는 서구중심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기술이 과거에도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현재 중심적 역사해석과 무관하지 않다. --- p.41 제분기는 기술의 역사에서 최초의 기계로 평가되고 있다. 기계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동력발생장치, 동력전달장치, 작업장치의 세 가지 부문으로 구성된다. 제분기의 경우에는 수차가 동력발생장치가 되고, 기어가 동력전달장치, 분쇄기가 작업장치의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실상 제분기는 가내 수공업에서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전환되는 매개물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점은 밀(mill)이란 단어의 용례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밀은 제분소를 지칭하는 용어에서 비롯되었지만, 기계 문명의 상징인 공장의 초기 형태를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 p.76-77 세균혁명 덕분에 수술은 거의 완벽한 멸균 상태에서 진행되었고, 주요 상수도원은 염소로 소독되었으며, 유제품은 저온으로 살균되어 유통되었다. 세균의 치명적인 위협은 일반 대중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들 중 일부는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키스와 같은 신체적 접촉이나 옷과 이불을 함께 쓰는 일이 금기시되었으며, 성찬식에서 잔을 돌리는 것도 위험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113 흥미로운 점은 범선이 오대양을 누비던 300년 동안의 전성기보다 증기선이 출현한 이후 50년 동안에 범선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는 사실이다. 감당하기 힘든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면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전례 없던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으로 해당 기술의 수명을 얼마간 연장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다음에 등장하는 기술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범선효과(sailing ship effect)’로 불리고 있다. --- p.124 재봉틀은 천, 가죽, 종이, 비닐 등을 실로 엮는 데 사용되는 기계이다. 영어로는 소잉 머신(sewing machine)이고, 일본에서는 미싱(ミシン)으로 불린다. 소잉 머신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뒷부분인 ‘머신’이 변하여 ‘미싱’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만 해도 재봉틀은 가정에서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계였기 때문에 ‘재봉틀 = 기계’라는 등식이 성립했던 셈이다. 재봉용 기계가 우리나라에서 재봉기(裁縫機)가 아닌 재봉틀로 불리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제봉용 기계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 그 기능이 베‘틀’과 비슷하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에 재봉‘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p.145 1893년에 벨의 특허시효가 만료되자 많은 기업들이 전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1902년이 되면 벨과 연계되지 않은 독립회사들이 9천 개에 이르렀다. 벨 전신회사나 AT&T가 전화를 사무용으로 간주했던 반면, 새로운 독립회사들은 전화가 사교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에 중산층 여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친구나 친지에게 안부를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전화를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전화의 다른 용도는 전화 시스템의 변화에도 반영되었다. 처음에는 교환수가 플러그를 써서 전화선을 수동으로 연결시켜 주었지만, 교환수가 전화를 통한 대화를 엿듣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자 자동 다이얼에 의한 전화 시스템이 정착되었던 것이다. --- p.193-194 라디오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사람으로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들 수 있다. 그는 미국의 집집마다 보급된 라디오를 잘 활용했다. 훗날 ‘노변담화(fireside chat)’로 불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루스벨트는 마치 난롯가에서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는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공황 시절에 루스벨트는 미국 국민들에게 은행의 예금을 빼나가지 말아줄 것을 호소했고, 국민은 그를 믿고 따랐다. 이런 국민적 믿음을 바탕으로 루스벨트는 강력한 뉴딜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다. 루스벨트가 하반신 장애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만약 당시에 텔레비전이 있었다면 그의 정치력은 상당히 약화되었을지도 모른다. --- p.224 한번은 오빌 라이트가 기자들로부터 “비행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언제 가장 큰 흥분을 느꼈냐?”는 질문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상 최초의 비행에서 기체가 이륙하던 순간이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오빌은 예상을 깨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비행을 하지 않을 때 더 전율을 느꼈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비행 전날 침대에 드러누워 다음 날 비행이 얼마나 짜릿할지를 생각해 볼 때가 가장 흥분되었으니까요.” --- p.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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