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이와 사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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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22.06.20 | 조회수 |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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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의 시대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와 사탑의 이야기, 그리고 뒤에 나올 두 이야기의 충분히 음미하려면 그것의 올바른 배경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얘기되는 사건들은 과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대에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15세기 무렵까지 학자들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고대 학자들의 가르침을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받아들여 왔었다. 그러나 15, 16세기가 되면서 여러 가지 중요한 발견이 연달아 일어나고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그 예로 아메리카 등 신대륙이 발견되었고 종교개혁은 종교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또한 인쇄술이 발달하었다. 호기심에서 자연계를 조사하기 시작한 소수의 학자는 빈번히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1500년경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Niklas Koppernigk, 1473~1543)라는 폴란드의 철학자는 태양이야말로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는 그 둘레를 돌고 있다는 생각을 발표해서 지식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 견해는 고대 학자의 가르침에 어긋난 것이었다. 이 새로운 믿음은 널리 보급되지 않았거니와 일반에게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대부분 대학이나 학교에서는 여전히 고대 학자 특히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 C. 384~322)가 확립한 전통적인 과학을 계속해서 가르쳤다. 갈릴레이는 1564년에 태어났다. 젊었을 때 먼저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대학에 들어가자 의학을 그만두고 수학을 연구하기로 했다. 이 분야에서 그는 비상한 독창성을 발휘해서 그의 수학의 연구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 대학자들의 저서를 그냥 읽고 논하는 것뿐인 종래의 연구 방법과는 전연 다른 것이었다. 갈릴레이는 실험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갈릴레이 이전에도 소수의 사람은 실험적 방법에 의해 과학을 연구했는데 당시의 학자들에게서 아주 심한 비난을 받았다. 갈릴레이 자신도 이런 비난을 면치 못했던 것은 다음의 전설적인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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