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농업고등학교 로고이미지

게시판

RSS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발명교실 게시판입니다.
그림으로 읽는 서양과학사
작성자 *** 등록일 22.06.29 조회수 27

 

그림으로 읽는 서양과학사

 

그리스 자연철학부터 크리스퍼 가위까지, 과학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을까?

김성근 | 플루토 | 2022년 03월 11일

 

 

목차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1 최초의 과학자,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
2 중세 유럽 1000년을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3 알렉산더대왕을 등에 업은 헬레니즘 시대의 수학자들
4 로마 전선을 모두 불태워버린 아르키메데스의 집광경
5 고대 자연철학자들의 원자론
6 백과사전, 로마인의 취향
7 풀리지 않는 천체의 운동을 기하학으로 해석한 프톨레마이오스
8 기독교 신학자들, 중세 과학과의 타협점을 찾다
9 이슬람으로 전승된 그리스 과학, 독자적으로 꽃을 피우다
10 12세기 중세 과학의 르네상스
11 서문 한 줄이 살려낸 코페르니쿠스 혁명
12 프랜시스 베이컨, 새로운 과학 방법론을 고안하다
13 인체의 재발견, 베살리우스와 시체 해부
14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자연 마술과 원격작용
15 혈액은 순환한다는 사실을 밝힌 윌리엄 하비
16 태양중심설을 흔들고 원궤도 운동을 끝장내다, 브라헤와 케플러
17 실험과학의 탄생과 갈릴레이
18 자연은 신이 창조한 거대한 정밀 기계 장치
19 ‘왜’보다는 ‘어떻게’가 중요하다, 고독한 천재와 사과나무
20 과학혁명에 힘을 실어준 과학도구들
21 근대 과학자들의 패트론
22 영국의 왕립학회와 프랑스의 왕립과학아카데미
23 화학의 탄생, 연금술과 결별하다
24 단두대로 사라진 비극의 화학자 라부아지에
25 전기와 자기장의 탄생
26 거리로 나선 과학자, 과학을 찾아 나선 대중
27 진화론과 인간의 기원
28 과학, 기술과 결합하다
29 동아시아를 삼킨 서양 근대 과학
30 인류의 사고를 다시 한번 뒤흔든 현대물리학의 탄생
31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쟁에 참여한 과학자들
32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시도, 유전자 과학

찾아보기

저 : 김성근

어릴 적부터 별 보기와 만들기를 좋아했다. 스무 살 무렵, 신과 과학적 진리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과학이 다른 학문과 무관한 지식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결국 과학사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 흥미로운 과학도구들을 직접 만들고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동서양 과학 사상의 만남, 국제 병기 무역 등에 관심을 가져왔고, 최근에는 우리 과학 용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연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남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후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교 센탄과학기술연구센터와 일본 학술진흥회에서 연구원을 지냈고, 도쿄 오오츠마여자대학교에서 강의했다. 이후 영국 니덤연구소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과학기술사연구실에서 동서양 과학을 비교 연구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공은 과학사다.

『사회 속의 과학』,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등을 번역했고, 근대화 시기 동서양 과학의 교류에 관한 수십 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했다. 첫 책 『교양으로 읽는 서양과학사』를 시작으로 『문학과 과학Ⅰ: 자연·문명·전쟁』(공저), 『조선 근대 과학기술사 연구』(일본 출간, 공저) 등을 내놓으면서 과학에 따뜻한 생명을 불어넣는 데 힘쓰고 있다.


책 속으로

탈레스, 아낙시메네스, 엠페도클레스 등 초기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물이나 불, 공기, 흙과 같은 ‘물질’을 ‘아르케 ’, 즉 세상의 근원이자 근본 원리로 생각할 때 피타고라스가 제기한 ‘숫자 ’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우주에 관한 그리스인들의 사고를 ‘추상의 세계’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훗날 서양 근대 과학의 탄생에 없어서는 안 됐던 수학적 세계관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다.
--- p.29

무엇보다도 로마 시대의 대표적인 백과사전적 저서는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의 《박물지》이다. 이탈리아 북부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플리니우스는 로마로 나온 이후 전형적인 상류층 교육을 받았다. 대부분의 삶을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보냈던 플리니우스는 근무 틈틈이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는데, 《박물지》 이외의 책들은 현재 소실되었다.
라틴어로 쓰인 《박물지》는 세계 각지의 문물과 풍속에 관한 정보의 집대성이다. 총 37권으로 이루어진 《박물지》는 77년에 먼저 10권까지 출간되었고, 플리니우스 사후에 그의 조카 소 플리니우스가 나머지를 출간한 것으로 추정된다.
--- p.75

이븐 알 하이삼은 광학 분야에 놀라운 업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물을 본다는 것은 사람의 눈에서 방출된 어떤 시각 물질이 그 사람이 보고자 하는 대상에 도달한 결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는 이런 생각을 거부하고, 사람이 어떤 물체를 볼 수 있는 것은 물체에 반사된 광선이 사람의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암실에서 바깥쪽으로 뚫린 바늘구멍을 통해 카메라 오브스쿠라로 개기일식을 관찰하는 방법도 그가 정확한 광학 지식을 바탕으로 정리해놓은 것이다. 알 하이삼이 1021년에 집필한 《광학의 서》는 1270년 라틴어로 번역되었고, 르네상스 이후에는 유럽 국가들의 광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다.
--- p.111

과학의 역사에서 1543년은 기억할 만한 해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빛을 본 바로 그해에 인체에 대한 중세적 시각을 뒤흔든 또 한 권의 획기적인 저서,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가 출간되었다. 근대 의학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이 책은 르네상스적 예술과 과학의 절묘한 만남의 산물이다. 책에 실린 약 이백오십여 개에 이르는 인체 해부의 경이로운 삽화는 중세의 인습적인 그림에 식상해하던 유럽인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 p.147~148

연금술사들은 이 같은 금속의 성장 과정을 실험실로 옮겨와 직접 재현할 수 있다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납과 구리, 철과 같은 금속을 자연의 섭리에 맞춰 자라나게 하면 금이나 은과 같은 고귀한 금속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연금술사들은 비천한 금속을 값비싼 금과 은으로 바꾸는 데는 일명 ‘철학자의 돌’이라는 신비한 물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철학자의 돌은 어느 누구에게도 발견된 적이 없으나, 연금술사들은 오랫동안 그 존재를 찾아 헤맸다.
--- p.158~159

그런데 뉴턴을 일약 유럽의 스타로 만든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사실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의 독촉이 없었다면, 훨씬 뒤늦게 빛을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1684년 어느 날 핼리는 뉴턴의 케임브리지 연구실을 방문했다. 그는 얼마 전 런던의 한 찻집에서 로버트 훅, 크리스토퍼 렌과 함께 나눴던 문제를 뉴턴에게 문의할 참이었다. 만약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따라 감소한다면 행성의 궤도운동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뉴턴은 즉시 그것은 타원궤도일 것이며 얼마 전에 자신이 계산했다고 답했다. 핼리는 뉴턴의 연구 결과를 즉시 출판하도록 독려했고, 왕립학회를 대신하여 자신이 출판 비용을 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핼리의 방문과 독촉이 준 자극은 뉴턴이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었던 동기가 되었다.
--- p.212

뉴턴이 연금술 연구에 심취해 있던 17세기에, 오늘날 과학혁명의 또 다른 주역으로 알려진 영국의 자연철학자 로버트 보일은 연금술사들의 물질관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보일은 1661년에 쓴 《회의적인 화학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물·불·공기·흙의 네 가지 기본 원소와 수은·유황·소금과 같은 파라셀수스의 세 가지 원질은 관찰의 오류에서 온 잘못된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그와 같은 전통적이고 추상적인 물질 대신에 ‘원초적이고 단순한, 결코섞이지 않는 물질’을 그는 ‘원소’라고 규정했다. 화학자들이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물질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보일의 주장은 연금술과 화학을 구분하는 최초의 경계선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 p.247

1951년 가을 무렵, 왓슨은 캐번디시연구소의 크릭과 함께 DNA의 분자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왔다. 그들은 의욕적으로 공동 연구를 시작했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사이 킹스칼리지런던의 프랭클린은 더욱 선명한 DNA의 엑스선 회절 사진을 찍으며 목표에 다가가고 있었다. 한 일화에 따르면, 프랭클린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윌킨스는 프랭클린이 찍은 엑스선 회절 사진을 그녀의 동의 없이 가지고 나와 왓슨과 크릭의 연구실을 자주 방문했다. 결과적으로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고 한다.
--- p.352~353
이전글 그래도 지구는 움직인다
다음글 망원경과 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