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압계의 로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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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22.07.12 | 조회수 |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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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엽까지 과학자들은 자연은 진공을 싫어하고 겁낸다고 믿어 왔다. 이 자연이 진공을 싫어한다는 믿음은 펌프의 작용을 설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펌프는 긴 관으로 한끝을 길러 올리려는 물속에 넣고 다른 한 끝을 통이나 둥근 관에 연결해 놓는다. 펌프의 핸들을 아래위로 움직이면 둥근 관 안에 부분적인 진공이 생긴다. 그러면 자연은 진공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곧 물을 관 속으로 상승시켜 빈 곳을 채운다. 이렇게 당시의 과학자들은 설명했다.
물이 안 나오는 우물과 갈릴레이
전설에 의하면 1640년 토스카나 대공(Grand Duke of Tuscany 大公)이 궁전 뜰에 우물을 파기로 했다. 일꾼들은 보통 우물보다 훨씬 깊게 파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약 40피트 깊이까지 파서야 겨우 수면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펌프를 박아서 관의 끝이 지하수에 잠기도록 했다. 그리고 펌프를 움직였으나 이상하게도 아무리 빨리 핸들을 상하로 움직여도 물이 펌프에서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펌프의 어딘가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고 신중히 검사해보았으나 펌프에는 아무런 결함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기묘한 일은 곧 대공에게 보고되었으나 대공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왜 펌프가 잘 작동하지 않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당시 대공과 같은 부호들은 대개 유명한 과학자의 <후원자(patron)>로 되어 있었다. 즉 그들은 과학자에게 급료를 주어서 과학자들이 생계비를 벌기 위하여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었다. 펌프의 일이 있기 훨씬 전에 갈릴레이는 대공의 <특명 수학자 겸 철학자(Chief Mathematician and Philosopher)>로 임명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공은 이 문제에 관한 의견을 갈릴레이에게 물었다. 갈릴레이는 물이 펌프의 관 속을 「18 밤」 (bah, 약33피트)의 높이까지는 올라가지만, 그 이상은 올라가지 않는 것을 알았다. 갈릴레이는 이 사실을 <설명>하고 자연은 진공을 싫어하지만, 그 혐오는 물이 관을 18밤 높이까지 오르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설명에 아주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갈릴레이는 당시 이미 노인이어서 젊고 전도가 촉망되는 제자였던 토리첼리(Evanglist Torricelli 1608~47) 에게 이 문제를 연구할 것을 부탁한 것에서 알 수 있다. (Encyclopedia Britannica Supplement,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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