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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교실 게시판입니다.
어느 유명한 정치가의 연날리기
작성자 *** 등록일 22.08.09 조회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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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7년 런던에서 필라델피아의 미국 철학회(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에 보내진 한 편지에 전기에 관한 최근의 연구가 몇 가지 소개되었다. 그 편지를 쓴 사람은 선물로 당시 런던에서 행해졌던 전기 실험에서 쓰인 유리막대를 하나 보냈다.

 

 

   프랭클린의 생각을 달리바르가 실험했다

 

 

   필라델피아에 사는 40세의 인쇄업자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90)은 이 새로운 화제에 깊은 흥미를 느껴 가능한 여러 가지 실험을 생각해 냈다. 그 몇 가지 실험을 그는 직접 했다. 자기가 해본 실험과 할 수 있는 것으로 시사하는 실험을 합쳐서 그 전부를 설명한 편지를 런던에 써 보냈다. 그 편지에 그는 또 전개와 전기가 여러 가지 면에서 같다고 생각되는 이유를 들었다.

   프랭클린의 전기에 관한 편지는 대단한 평판을 얻어 프랑스어로도 번역되었다. 어느 유명한 프랑스 과학자는 그 사본을 압수했으나 번역이 너무 나빠서 달리바르(Thomas FRrancis Dalibard)라는 동료 과학자에게 다시 번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달리바르가 번역을 맡았는데 그 자신이 편지의 내용에 매우 흥미를 느껴 프랭클린이 편지에 쓰기는 했지만 실행하지 않았던 실험 중에서 하나를 실험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번개가 전기와 같다는 것을 실증하기 위해 구름에서 번개를 끌어내어 지상으로 가져오는 실험이었다.

   1752년 봄 달리바르는 콰피에(Coiffier)라는 늙은 병사를 고용했다. 이 사람은 군대를 마치고 목수로 일하고 있었다. 콰피에는 필요한 장치를 만들라는 명을 받고 파리에서 25km가량 떨어진 마를리(Marly)라는 마을에 있는 어느 오두막집에서 그것을 조립했다. 그는 <전기의자>를 만들었는데 포도주병을 세 개 세우고 그 위에 나무판자를 올려놓은 것이었다(유리는 전기를 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병은 절연의 역할을 했다). 또 길이가 약 40피트 지름 1인치 되는 쇠막대를 구해서 이것을 의자에 매어 그 끝을 공중 높이 세웠다. 달리바르는 지혜와 용기를 겸한 콰피에에게 최초의 뇌우가 가까워지면 곧 오두막집에 달려가도록 말해 두었다. 그는 또한 콰피에에게 놋쇠 철사의 한끝을 유리병-이것이 전기를 절연시킨다-속에 끼우고 손으로 잡아도 감전되지 않게 만든 것을 주면서 이 철사를 쇠막대 곁에서 들고 있으라고 일렀다.

   1752510일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콰피에는 우당탕하는 뇌성을 듣고 오두막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놋쇠 철사를 들고 쇠막대 가까이 가져갔다. 곧 꽝 하는 소리가 나고 밝은 불꽃이 막대에서 철사로 튀었다. 다음 두 번째 불꽃이 일어났다. 이것은 처음 것보다 더욱 밝고 소리도 컸다. 그전에 달리바르는 무슨 이상한 소리가 나면 승려를 데려다 관찰한 것을 기록해 두라고 일러 놓았다. 그래서 콰피에는 승려를 불렀다. 승려는 전갈받고서 곧 오두막집으로 달려왔다. 교구(敎區) 사람들은 오두막집에서 꽝 하는 소리가 났을 때 승려가 흥분해서 바삐 달려가는 것을 보고 콰피에가 벼락을 맞았을 것이라고 수군댔다. 이 소문은 온 마을에 퍼지고 번개 뒤에 우박이 내리는 데도 온 동네 사람들은 승려가 콰피에의 최후의 의식을 집행하는 것을 보려고 뒤쫓아 달려갔다. 그러나 오두막집 안을 들여다보니 승려는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기도는커녕 손으로 철사를 잡고 그 한끝을 쇠막대에 가까이 가져가고 있었다. 1인치 반 정도의 푸른 불꽃이 철사와 막대 사이에서 튀고, 동시에 강한 황 냄새가 났다. 뒤이어 또 한 번 불꽃이 튀어 이번에는 승려의 팔을 쳐서 심한 아픔을 느끼게 했다. 그의 팔이 철사보다 쇠막대 쪽에 더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팔을 걷어 보았더니 맨살을 철사를 때렸을 때와 같은 흉터가 나 있었다. 승려 곁으로 몰려간 사람들은 그의 몸에서 강한 황 냄새가 났다고 말했다.

   이 실험 이야기는 급속히 퍼져서 며칠 뒤에는 국왕의 부탁으로 같은 실험을 파리에서 행하게 되었다. 국왕은 불꽃을 보고 크게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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