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의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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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22.09.08 | 조회수 |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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뢴트겐이 운 좋은 관찰로 중요한 발견을 하고 나서 몇 달 지나 또 다른 과학자가 X선의 발생 경로를 고찰한 다음 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의 뜻밖의 결과는 방사능의 발견으로 이끌었다.
형광을 연구한 베크렐 일가
X선이 나오는 동안에는 음극선이 크룩스관의 유리 벽에 충돌하여 초록색 엷은 빛이 보인다. 그러나 이 빛은 음극선을 차단하면 소멸한다. 과학적인 용어로는 관 벽에서 형광을 발한다고 말한다. 형광은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다. 어떤 물질들에 햇빛을 쬐면 물질이 파르스름한 빛을 낸다. 그런데 어두운 곳으로 옮기면 이 형광은 없어진다. 그러나 다른 물질들은 햇빛에 노출하면 형광물질과는 달리 어두운 곳에서도 짧은 시간 동안 빛을 낸다. 이것을 인광물질(燐光物質)이라고 한다. 형광과 인광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프랑스의 저명한 과학자 에드몽 베크렐(Edmond Becquerel, 1820~1891)과 그의 아들 알리 베크렐(Henri Becquerel, 1852~1908)은 19세기 후반에 우라늄이라는 진기한 금속을 함유한 물질을 전문적으로 연구했다. 아버지는 몇 가지 우라늄 염(鹽)의 형광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러나 아들 앙리는 때로 이것을 인광이라 불렀다.
우라늄 염을 쓴 실험
1896년 1월 앙리 베크렐은 파리에서 처음 열리는 X선 사진 전시를 구경했다. 그가 X선에 특히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다른 과학자가 X선이 크룩스관의 형광을 발하는 유리 벽에서 생긴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베크렐은 만약 형광을 발하는 유리벽 에서 X선이 생기는 것이라면 다른 형광물질도 X선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는 베크렐가 대대로 관심의 초점인 우라늄 염을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자기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황산칼륨 우라늄(K₂SO₄ · UO₂SO₄ · 2H₂O)이라는 염(鹽)을 써서 실험해 보려고 작정했다. 그가 이 염을 만든 것은 1896년보다 훨씬 이전이었고 아버지의 형광 실험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 실험은 검고 두꺼운 종이로 싼 사진건판이 태양광선에 감광되지 않지만, X선에는 감광된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는 건판을 쌀 검은 종이에 우라늄 염의 결정을 붙였다. 그 옆에 은화(銀貨)를 한 장 놓고 그 위에도 같은 결정을 놓았다. 다음엔 이 건판을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고서 형광을 발하게 했다. 형광을 내는 결정은 X선도 방출하리라는 예상에서였다. 첫째 결정에서 방출된 X선은 건판 위에 뚜렷한 결정의 흔적을 남길 것이고, 둘째 결정에서 방출된 X선은 은화에서 저지당해 건판 위에 은화의 그림자를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건판을 현상한 결과는 베크렐의 예상과 합치되었다. 첫째 결정의 흔적이 있었고, 또 은화가 놓인 곳에는 형태가 뚜렷한 그림자가 생겼다. 따라서 형광에는 형태를 발하는 우라늄 염은 X선을 방출한다고 추정되었다. 1896년 2월 26일 그는 실험을 반복했다. 먼젓번과 같이 검은 종이로 싼 사진건판에 우라늄 염과 은화를 얹고 집 밖에 내놓았다. 그날은 구름이 끼었으므로 다음날까지 그대로 두었으나 연이틀 쪼인 햇빛의 양은 극히 적었다. 그래서 그는 건판에 결정과 은화를 붙인 채 어두운 벽장에 넣어 두었다. 맑은 날씨를 기다려 다시 햇빛에 쬘 심산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갤 전망이 없었으므로 그는 건판을 그대로 현상하기로 작정했다. 햇빛의 투사량이 적어서 희미한 영상이 인화되리라 기대했으나 예살 밖에도 건판 위 결정의 흔적과 은화의 그림자는 전과 다름없이 분명한 윤곽을 드러냈다. 앞에서 실험했을 때는 결정을 오랜 시간 햇볕에 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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