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의 과학의 모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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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22.09.14 | 조회수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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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시에는 사상 유례없이 강력한 폭탄이 투하되었다. 이것은 적에게 터뜨린 최초의 원자폭탄이었으며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거대한 파괴력의 현장을 보여 주었다. 전쟁이 끝나자 당시의 미국 대통령 트루먼(Harry S. Truman)은 전시 기밀을 해제한 후 이 폭탄의 발명과 제조야말로 「사상 최대의 과학의 투기」였다고 술회하였다.
원자핵분열의 발견
이 발명은 우라늄이나 다른 방사성원소의 원자가 차츰 붕괴함을 발견한 베크렐과 이 분야를 탐색한 많은 과학자에 의해 급속한 진보가 달성된 뒤의 일이었다. 어떤 종류의 원자가 스스로 분열한다는 베크렐의 발견은 과학자들에게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원자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는 가설을 세우게 했다. 그때까지 알려진 자연에서 산출되는 원소 중에서 가장 무거운 원자는 우라늄이고 이것은 가장 가벼운 수소 원자 238개의 무게와 맞먹는다. 그러나 우라늄 원자는 매우 작으므로 몇100만 개를 합쳐도 핀 대가리 정도의 크기도 안 된다. 원자는 그처럼 작은 크기이기는 하나 그보다 더 작은 입자들로 구성된 것이기도 하다. 원자는 두 개의 중요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하나는 중심 부분에 있는 원자핵이며 이것은 전기적으로 +로 하전(荷電)된 입자와 주성인 입자를 포함한다. 또 하나는 바깥 부분에 있는 전자라 불리는 –전하를 갖는 가벼운 입자이며 원자핵의 둘레를 돌고 있다. 1932년 매우 중요한 실험이 성공되었다. 케임브리지의 두 과학자 콕크로프트(John Douglas Cockcroft, 1897~1967)와 월턴(Ernest Sinton Walton, 1903~ )이 실험실에서 원자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실험에서 쪼개진 원자의 수는 극히 적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 두 도이칠란트 과학자 한(Otto Hahn, 1897~1968)과 슈트라스만(Fritz Statesman, 1902~ )은 우라늄 원자를 연구하여 이것이 케임브리지에서의 실험과는 다르게 쪼개짐을 밝혀냈다. 이 연구에서 머지않아 몇100만의 원자핵이 연쇄적으로 분열하여 순간에 그 전부가 파괴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자핵이 쪼개지는 것을 <원자핵분열>이라 하고 이것이 급속히 진전되는 과정 전체를 <연쇄반응>이라 부른다. 과학자들은 연쇄반응이 성공할 경우 막대한 에너지가 방출됨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에는 대규모의 원자에너지를 가까운 시일 안에 얻을 수 있음이 확실하게 되었다. 이런 발견에는 아무런 비밀도 없었다. 그 까닭은 대전 전의 과학계에서는 과학자들이 자기의 연구나 발견의 상세한 내용을 자유로이 교환했기 때문이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원자 과학자들은 틀림없이 산업 분야에서의 원자에너지의 이용에 관한 연구에 쏠렸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연구의 방향을 전적으로 바꾸었다. 한편 정치가들도 이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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