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과 지배자와 과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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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22.10.04 | 조회수 |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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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좋아하는 찰스 2세
크롬웰 혁명이 있었던 뒤 찰스 2세(Charles Ⅱ, 1630~85, 제위 1660~85)가 영국 왕위를 다시 회복한 다음(1661) 곧 세상 사람들은 통속과학에 대단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주로 자연에 관한 지식을 개선하기 위한 왕립학회 (The Royal Society for the Improvement of Natural Knowledge, 약해서 왕립학회)라고 하는 단체가 활약한 덕택이었다. 국왕은 여러 가지 과학에 관해 크게 흥미를 느끼고 기꺼이 왕립학회의 후원자(patron)가 되었다. 많은 신하와 다른 사람들도 왕의 본을 땄다. 얼마 후에 왕립학회 회원으로는 「남작의 작위를 가진 사람, 의과대학의 평의원, 그리고 옥스퍼드대학, 케임브리지대학의 수학, 물리학, 자연철학의 교수들」이 포함되었다. 유명한 역사가 매콜리 경(Sir Thomas Abington Macaulay, 1800~59)은 당시 과학에 대한 관심을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매콜리, 영국사; T. B. Macaulay, History of England).
『왕립학회가 설립되고 몇 달도 안 돼서 실험과학은 크게 유행하였다. 사람들은 완전한 형태의 정부를 갖는다는 꿈보다는 날개를 치면서 런던탑에서 웨스트민스터사원(Westminster Abbey)까지 날 수 있는 날개의 꿈에 관심이 컸다. ……왕당파와 의회파, 구교파와 퓨리턴(Puritan)은 이번만은 서로 손을 잡았다. 성직자, 법률가, 정치가, 귀족, 왕후들은 승리에 자만했다. 시인은 다가오는 황금시대를 열렬히 구가했다. 드라이들(John Dryden, 1631~1700)은 왕립학회가 곧 우리들을 지구 끝까지 데려다주어 한층 아름다운 달을 보여주고 즐겁게 해줄 것이라고 예언했다. 찰스왕 자신도 화이트홀(White Hall)에 실험실을 갖고 있었으며 거기에 있을 때는 회의 테이블에 앉았을 때보다 훨씬 생기있고 주의 깊었다. 공기펌프나 망원경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훌륭한 신사의 자격으로써 필요한 조건이라 생각됐다. 정숙한 부인들까지도 때로 과학에 취미를 가졌다고 시늉을 하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자석이 정말 바늘에 작용하는가에 대해 또 현미경이 파리를 참새의 크기만큼 크게 보이게 하면 즐거운 환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루퍼트 왕자의 구슬
바바리아 공(Duke of Bavaria) 루퍼트 왕자(Prince Rupert, 1619~82)는 왕립학회의 가장 충실한 회원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찰스 1세(Charles Ⅰ, 1600~49)의 조카로 내란 때에는 백부의 군대에 소속되어 싸웠다. 백부가 패배한 뒤 대륙으로 건너가서 왕정복고(王政復古) 때까지 머물러 있었다. 망명하고 있는 동안 과학 연구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사촌 찰스 2세와 함께 영국에 돌아왔다. 과학에서 이룩한 연구와 발견의 덕으로 그는 세계의 왕족 과학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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