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와 감자기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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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23.02.23 | 조회수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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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법과 필 수상
영국제도에의 곡식의 수입과 수출을 규제하는 법령은 곡물조령(穀物條令)이라고 불렸는데, 수백년 전부터 내려왔었다. 특히 19세기 전반에 제정된 「곡물법」은 수입되는 밀 전부에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영국의 농업경영자를 외국과의 경쟁에서 지켜주었다. 관세의 비율은 때에 따라 적당히 변동시켜 싼 외국산 밀도 영국 시장에서는 언제나 국산 밀과 같은 값으로 팔리도록 하였다. 이 무렵에 영국은 급속히 공업국으로 발전하고 있었고 공업지대에 사는 많은 사람은 이 관세의 부과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들은 관세가 빵값을 함께 올릴 (사회의 희생의 대가로 농업경영자의 주머니를 가득 채워줄) 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그 보복으로 영국의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영국 사람이 기계나 직물 따위를 해외로 파는 데 곤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두 개의 정당은 이에 대해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토리(Tory)당은 보호무역을 신봉하였으나 휘그(Whig)당은 모든 관세의 철폐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문호 개방」의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 이야기는 1845년에 시작되지만, 당시는 로버트 필(Sir Robert Peel, 1778~1850)경을 수상으로 하는 토리당의 정부가 4년 동안 집권하고 있었다. 필이 전부터 농업의 보호에 품고 있던 의견은 차츰 변해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 해의 전반에 그의 정책은 관세를 점차로 완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었고 이것을 전적으로 폐지하려고 하는 기미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의 전기작가의 한 사람이 쓰고 있는 바와 같이 「관세를 폐지하고자 하는 커다란 결심을 궤도에 올려놓는 것은 약간의 조처만 취하면 될 수 있었다.」 (파카, 《로버트 필》 ; C. S. Parker Peel, 1899) 그러나 일단 그것을 실천하면 그 반발이 엄청날 것이 분명하였다. 왜냐하면 보호무역주의를 부르짖는 토리당의 지도자인 그가 어떤 이유에서든 하나의 상품에 대해서 보호를 포기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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