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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림솔의 마크 -- 만재흘수선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3.08.23 조회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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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선박은 작은 요트나 어선과 같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 배 옆구리에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이라 불리는 몇 줄의 선을 색깔로 그려놓고 있다. 이 선은 그 깊이까지 물속에 배의 동체가 들어가도 침몰의 위험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배에 어느 정도의 화물을 실어도 좋은가의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선이 몇 줄이 있는 것은 배가 항해할 때 바닷물의 온도와 염분의 농도에 따라서 안전한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이 선을 사무엘 플림솔(Samuel Plimsoll, 1824~1898)의 이름을 따서 플림솔 마크(Plimsoll mark)라고 한다. 플림솔은 1868년에서 1880년까지 더비(Derby) 출신의 자유당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이 선의 표시를 의무적인 것으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때 역사적인 역할을 해서 파문을 일으켰다(영국 전기 사전;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

 

, 해운업계를 비난

 

  19세기 중엽이 되어 제임스 홀(James Hall)이라는 뉴캐슬(Newcastle)의 선주가 해운업계에 대하여 심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해상운송을 담당하는 선박의 상태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많은 선박이 항해에 견뎌내지 못할뿐더러 화물을 과중하게 싣든가 운행 장비가 불충분하든가 잘 가동하지 않든가 했다. 이러한 악조건의 원인으로 많은 배들이 바다에서 침몰하여 가끔 많은 인명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쓰레기 배는 관구선(棺柩船, coffin ship)이라 불렸으나 대개는 보험을 너무 지나칠 정도로 크게 들고 있었으므로 침몰해도 괘씸한 선주들은 손해를 보지 않았다. 실제 그러기는 고사하고 그들은 배가 침몰한 덕분으로 큰 돈벌이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당시의 법률로는 이러한 소름 끼치는 상태를 종결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홀은 법률을 개정하기 위한 일대 운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는 그 점에서는 조금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1871년에 이 사태를 처리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으나 그것은 홀이 희망한 것과 같이 화물의 과중 적재를 위법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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