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차, 길에 나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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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3.09.06 | 조회수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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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까지 세이버리, 뉴커먼, 와트와 같은 발명가들이 탄광 내에서 지하수를 퍼낸다는 일에 말을 대치할 만한 증기기관을 만들어 냈다. 그 무렵 이번에는 다른 발명가들이 노상에서 손수레며 마차를 끄는 일에도 말을 대치할 수 있는 증기기관 즉 증기기관차를 만들려고 생각하였다.
퀴뇨의 엔진
증기기관차를 처음 발명한 사람 중 하나는 니콜라 조세프 퀴뇨(Nicolas Joseph Cugnot, 1725~1804)라는 프랑스 사람이다. 그는 군사 기술자로 1769년에 먼저 증기기관차의 작은 모형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고 나중에는 레일 없이 길 위를 달리는 실물 크기의 엔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실물 크기의 엔진은 앞에 하나, 뒤에 둘 다 세 개의 바퀴를 갖고 실린더의 엔진을 싣고 이것으로 앞바퀴를 움직인다. 보일러에서 만들어지는 증기는 기관차를 기껏 15분밖에 달리게 할 수 없었고 그 뒤에는 다시 등기가 생길 때까지 엔진을 정지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육군성은 말 대신에 기관차를 써서 대포를 끌 수 없을까 하여 크게 관심을 기울여 실험하도록 명령하였다. 그 실험을 하는 날 엔진은 파리의 거리로 끌려 나와 한 시간에 10마일의 속력으로 달렸다. 어느 모퉁이까지 갈 때는 모든 일이 잘되었다. 그 모퉁이를 돌려고 했을 때 기관차는 큰 폭음을 내면서 넘어졌다. 엔진은 파열되고 일설에 의하면 몇 사람이 부상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시험을 시찰하려 온 고위층 군인도 몇 사람 끼어 있었다고 한다. 시험은 즉시 중지되고 퀴뇨가 그런 위험한 물건을 두 번 다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창고에 넣고 자물쇠가 잠겨졌다 (퀴뇨 자신도 엔진과 같이 감금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엔진은 파손되지 않았다. 어느 저술가에 의하면 뒤에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1821, 재위 1804~1815)은 자기의 군대에 소용될 듯한 것에는 무엇에나 관심을 두는 사람이었으므로 이 엔진에도 대단한 흥미를 나타냈다고 한다. 1801년에 나폴레옹은 그것을 다시 한번 시험하기로 했으나 실행되기 전에 나일(Nile) 침략을 위해 출발해 버렸다. 이 최초의 엔진은 매우 그럴싸한 장소에서 잠자고 있다. 즉 그것이 처음 시험 된 거리 근처에 있는 박물관에 수용되어 있다 (기계공학자협회보; Proceedings of the Institute of Mechanical Engineers, 1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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