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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교실 게시판입니다.
경각심을 갖되 두려워 말자, 우리 모두가 방역요원이 되어야 한다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4.02.20 조회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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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는 과거에 천연두를 일컫던 속칭이다. 천연두는 가장 오래된 인간 감염병 가운데 하나이고, 박멸되기 전까지 3억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에는 이 병에 걸리면 셋에 하나꼴로 죽어나갔고, 살아남아도 얼굴에 보기 흉한 마맛자국이 남았다. 원래 마마는 임금을 비롯해서 왕족에게 붙이던 존칭이다. 극한 공포의 대상을 지극 존엄으로 높여 부르면, 무자비한 병마가 혹시라도 자비를 베풀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천연두를 마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마 박멸

 

 

1796년 영국 출신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1749~1823)가 시도한 우두접종이 성공하기 전까지 인간은 천연두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었다. 그 당시 우유를 짜는 사람들은 소에서 나타나는 훨씬 약한 천연두인 우두에 걸리기 때문에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제너는 이런 생활 속 경험을 역사적인 임상실험(?)에 적용했다. 우두에 걸린 여인의 우두 물집에서 나온 액체를 묻힌 바늘로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의 팔을 살짝 긁은 것이다. 긁힌 부위는 부풀어 올랐고 며칠 뒤 아이는 경미한 우두 증세를 보였지만, 다행히 곧 회복되었다. 더 중요한 건 그 소년이 다시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산 정약용(1762~1836)1798년에 펴낸 의학서 <마과회통(麻科會通)>에서 제너의 종두법을 소개했다. 또한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헌종 1(1835)에 정약용이 종두법을 실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두법은 서학(西學) 탄압과 함께 중단되었다가, 1880년에 의학자 지석영(1855~1935)이 한양에 종두장을 설치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195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글로벌 천연두 퇴치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1964년 전문위원회 검토를 거쳐 1967년 드디어 박멸 프로그램이 실행에 옮겨졌다. 당시 전문가들은 10년 안에 목표 달성을 점쳤다고 한다.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1977년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환자를 끝으로 더 이상의 천연두 발생은 없었고, WHO1980년 마침내 천연두 박멸을 공식 선언했다. 병원성 미생물과의 첫 번째 전면전에서 완승을 거두자, 인류는 승리감에 한껏 도취되었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한 채로 말이다.

 

천연두를 일으키는 바리올라(Variola)’바이러스는 감염된 환자와 직접 접촉해야만 전염된다. 2주 정도의 잠복기가 지나고 나면 고열과 두통을 동반한 몸살 증상이 나타나고 며칠 뒤 발진이 돋기 시작해서 약 열흘간 지속된다. 이때 전염력이 나타난다. 바리올라는 인체를 떠나서 살 수 없고, 자연 환경에는 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동물도 없다. 게다가 물집이 얼굴에 집중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따라서 맨눈으로 감염을 확인하고 즉시 격리하여, 전염을 차단한 상태에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예방 접종을 꾸준히 실행하면, 이론적으로 박멸이 가능하다. 물론 실제로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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