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농업고등학교 로고이미지

게시판

RSS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발명교실 게시판입니다.
21세기 감염병의 주인공 된 바이러스…인간이 초래한 건 아닐까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4.07.26 조회수 6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미국은 외형상 중립을 표방하며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191557, ‘루시타니아(Lousitania)호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의 잠수함 공격으로 비운의 영국 여객선이 격침되어 승객과 선원 1957명 가운데 무려 1198명이 희생된 참사였다. 미국인 사망자는 128명이었다. 미국 내에서 참전 여론이 불붙기 시작했다. 그런데 19171, 독일이 여기에 기름을 붓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독일 외교부 장관 아르투어 치머만(Arthur Zimmermann)은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에게 암호문을 타전했다.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한다면 미국에 빼앗긴 모든 영토를 되찾게 해주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미국이 중립을 포기하고 연합군으로 참전할 경우, 멕시코를 동맹으로 끌어들여 미국을 견제할 심산이었다. 행운의 여신은 미국 편이었다. 영국군이 이 암호문을 가로채 해독해서 미국 정부에 알린 것이다. 마침내 191746, 미국은 연합국 일원으로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파병을 위해 징병제를 도입했다.

191834, 미국 캔자스주 소재 펀스턴 기지(Camp Funston)에서 취사병으로 복무 중이던 한 병사가 기침과 두통, 고열로 몸져누웠다. 소위 스페인독감공식 1호 환자다. 3주 만에 수천명의 훈련병이 독감에 걸려 1000명 넘게 입원했다. 이후 여름까지 같은 기지에서 다섯 차례 더 독감이 발생했는데, 공교롭게도 대규모 신병 입소와 시기가 겹쳤다. 펀스턴 기지에서 시작된 독감은 이내 다른 미군 기지로 전파되었고, 이윽고 군함을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병영과 참호에서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한 군인만도 10만명이 넘었다. 이것이 연합군이 승기를 잡는 계기가 되었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하지만 미생물학 관점에서 냉정하게 보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감염병이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판단은 승자의 결과론적 해석으로 보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스페인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독감 피해를 봤다는 사실 말고는 스페인이 이 악명 높은 감염병 이름에 엮일 이유가 없다. 스페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론 검열이 심하지 않았다. 이 덕분에 스페인 신문은 독감 관련 기사를 마음껏 실을 수 있었는데, 얄궂게도 이로 인해 그 당시 독감하면 스페인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스페인독감 대신 ‘1918년 인플루엔자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미 군함에 올라타 유럽으로 건너간 독감 바이러스는 이내 팬데믹(pandemic)’으로 번져 두 해에 걸쳐 네 차례 대유행을 일으켰다. 1920년까지 5억명 이상을 감염하고 5000만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갔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참혹한 피해 상황만이 알려졌을 뿐 정작 그 병을 일으킨 병원체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거의 없었다. 과학자들이 무능하거나 태만해서가 아니었다. 아직 바이러스라는 이름조차 정립되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글 참나무라는 우주
다음글 기계 속의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