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실린과 지역 상징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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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4.09.13 | 조회수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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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대로 무궁화는 대한민국 나라꽃(국화)이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꽃은 물론이고 새와 나무 등도 그 지역을 알리는 동식물로 지정하고 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심지어 미생물까지도 공식 상징물로 삼는 곳이 있다. 예컨대, 2021년 8월 미국 일리노이주 정부는 페니실린을 만드는 푸른곰팡이 하나를 ‘주 공식 미생물(Official State Microbe of Illinois)’로 선포했다. 정작 페니실린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영국 의사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인데, 어찌하여 푸른곰팡이가 영국이 아닌 미국에서 이런 영광을 안게 되었을까?
발견과 정제
페니실린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건 첫 발견 이듬해인 1929년이다. 이후 플레밍은 이 항생제를 순수하게 분리해내려고 10여년 동안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 기간에 플레밍은 원하는 모든 연구자에게 푸른곰팡이를 기꺼이 분양해주었다. 누구라도 페니실린을 정제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에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옥스퍼드대학교의 생화학자 한 사람이 플레밍이 1929년 발표한 논문을 읽고 큰 관심을 가졌다. 나치를 피해 1933년 영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과학자 언스트 체인(Ernst Chain)이었다(‘페니실린과 슈퍼박테리아’, 경향신문 2021년 2월19일자 14면 참조).
체인은 애초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일하다 1935년 옥스퍼드대학교 병리학 주임교수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와 연이 닿았다. 새 직장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검토하던 체인은 페니실린 연구가 1929년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플로리에게 이에 관한 연구를 제안했다. 플로리는 곰팡이 배양을 전담할 전문가 노먼 히틀리(Norman Heatley)를 합류시켜 연구진을 꾸렸다. 연구 과정은 험난했다. 소량 분비되는 페니실린을 얻기 위해 푸른곰팡이를 엄청나게 많이 키워야 했고, 불안정한 페니실린을 분리해내는 실험 자체만큼이나 인간관계도 힘들었다. 둘 다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했던 탓에 플로리와 체인은 수시로 부딪쳤다. 어쨌든 페니실린 정제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부대끼며 나아갔고, 1년 반 만에 어렵사리 페니실린 0.1g을 손에 넣었다.
1939년 5월, 연구진은 실험용 쥐 여덟 마리에 병원성 연쇄상구균을 감염시키고, 그중 네 마리에는 페니실린을 주사했다. 히틀리는 밤새 실험실을 지켰다. 새벽 4시쯤, 쥐들의 생사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페니실린을 맞은 쥐는 모두 멀쩡했지만, 그렇지 않은 쥐는 몰살되었다. 다음날 결과를 토론하는 자리에서 체인은 기쁨에 겨워 춤을 추다시피 했다. 반면 플로리는 평소처럼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친한 동료에게 전화할 때 플로리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이후 연구진은 반복 및 보강 실험을 마치고, 1940년 8월에 기적과도 같은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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