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면역계와 유전자 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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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4.11.08 | 조회수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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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세포의 형태를 갖추지 못해 때때로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경계에 걸쳐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언뜻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이런 존재 앞에서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한없이 작아지기 일쑤다. 인간과 동식물은 물론이고 세균마저도 이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으니 말이다. 생물학에서는 편의상 바이러스를 비세포성 미생물로 간주하는데, 세균만을 감염하는 바이러스는 별도로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라고 부른다. 박테리오파지란 세균을 뜻하는 영어 ‘박테리아(bacteria)’에 ‘먹어 치우다’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파지인(phagein)’이 합쳐진 용어로 간단히 ‘파지(phage)’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바이러스의 공격과 세균의 방어
박테리오파지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1917년 이후로 세계 여러 나라 실험실에서 이 새로운 존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이르러 같은 무리를 이루는 세균 중에는 파지 내성을 지닌 개체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 초반, 스위스 미생물학자 아르버(Werner Arber)가 세균을 감염한 파지 DNA가 일정한 패턴으로 잘리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바이러스 DNA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효소의 존재를 의심하고, 이를 ‘제한효소’라고 불렀다. 세균 DNA는 건드리지 않고 침입한 파지 DNA에만 제한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를 담은 작명이다.
아르버 연구진은 후속 연구를 통해 대장균에서 제한효소와 ‘메틸화효소’를 각각 정제하는 데에 성공했다. 후자는 세균 DNA 군데군데에 화학적 딱지(메틸기, -CH₃)를 붙여 차별화시키는 효소이다. 비슷한 시기에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네이선스(Daniel Nathans)라는 미생물학자가 역시 대장균에서 분리한 여러 제한효소로 원숭이 종양바이러스 DNA를 절단하여 그 구조를 설명했다. 1970년에는 또 다른 미국 미생물학자 스미스(Hamilton Smith)가 제한효소마다 표적 DNA에 작용하는 독특한 부위(염기서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세 미생물학자는 197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파지는 숙주로 삼는 세균의 세포벽에 붙은 뒤 수축하면서 마치 주사를 놓듯 자기 DNA를 세균 세포 속으로 주입한다. 하지만 세균도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세균은 흡사 우리의 면역세포처럼 침입한 바이러스 DNA를 파괴하는 효소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효소들은 자기와 남의 DNA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자신의 것이 아니면 DNA의 염기서열을 인식하여 자른다. 더욱이 때에 따라서는 파지의 특징을 기억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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