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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우 자서전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4.01.31 조회수 24

 

 

 

공병우 자서전

공병우 저 | 지식산업사 | 2016년 01월 27일




목차

머리말 자서전을 쓰는 네 가지 까닭

제1장 팔삭둥이 쌍둥이
가난 딛고 부농이 된 할아버지/외양간 앞에서 태어났다/붉은 댕기머리 장손/열네 살에 든 장가/지긋지긋했던 서당 공부/보통학교 시절

제2장 내 인생의 길을 바꾼 한 편의 작문
농업학교 입학/엄격한 기숙사 생활/스트라이크의 주모자/상급생에게 칼 품고 달려든 하급생/교장을 비판한 작문/의사가 될 길이 열렸다/의사가 되고 싶은 집념/평생에 졸업장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제3장 스무 살에 합격한 의사 검정 시험
첫사랑과 의사 검정 시험/의사가 되어 신의주로 가다/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경성의전 미생물 교실 견학생/교통사고로 입원한 여학생/거들떠보지도 않는 안과 선택/꿩 먹고 알 먹는 숙직/경성제대 도쿠미쓰 교수의 문하생으로/박사 학위논문/해주도립병원 안과 과장/서울의 첫 안과 병원/창씨개명과 ‘공병우 사망’ 전보

제4장 되찾은 나라에서 시작한 일들
아리랑을 목 놓아 불렀다/처음 배운 한글맞춤법/이승만 박사의 안경과 나/제 나라말로 시작한 강의/내가 걸린 매독/백인제 박사와 함께 차린 출판사

제5장 한글 타자기를 만들기까지
공안과를 찾아온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처음 만든 한글 시력 검사표/타자기와의 첫 만남/잊힌 선구자들-이원익 씨와 송기주 씨/신체를 해부하듯 타자기를 발기발기 뜯어 놓고/병원 일은 뒷전에 미루어 놓고/춘원 이광수 선생과 나/발명품에 무관심한 사람들/명사들의 타자기 보급회

제6장 6.25전쟁과 내 인생
정치보위부에 끌려가다/사형을 기다리는 시간/살기 위해 허위 자백을?/자살 방법으로 선택한 영어 공부/목숨을 건져 준 한글 타자기/북쪽으로 끌려가는 신세/도망자의 운명/솔포기 속에서 꾼 악어 꿈/리어카에 실려서 가족 품으로/전쟁이 내게 준 교훈

제7장 “공 박사가 미쳤다!”
잊을 수 없는 김석일 대령/손원일 장군과 최현배 박사/미국은 장님들의 낙원/하와이에 퍼뜨린 쌍꺼풀 수술/변소를 목욕탕 속으로 옮겨 놓으니/한글 타자기의 전성시대/최초의 타자기 글자판 배열 변경/휴전회담에서 공을 세운 타자기/속도 한글 타자기의 보급/세벌식 한글 텔레타이프의 보급/한/일 맹인 친선 타자 경기 대회

제8장 고독한 글자판 투쟁
“공병우식과 김동훈식의 단점만 모은 졸작”/임종철 선생/이윤온 씨/김재규 씨와 나/탄압의 시작/백만 대군 송현 씨/민간 통일판 제정과 행정 소송

제9장 일흔두 살에 배우기 시작한 사진
카메라 메고 방랑길로/사진으로 누린 표현의 자유/어느새 ‘사진작가’라고 불리게 되고

제10장 미국 땅에 옮겨 차린 연구실
광주 사건과 병든 미국/이제는 바야흐로 컴퓨터 시대/침실이자 응접실이자 식당인 연구실/인쇄 혁명 일으킬 한글 식자기 연구/엉터리 표준 자판 없앤다는 소식은 들었으나/한글 쓰기 소프트웨어 개발/미국에 번진 한글 기계화 운동/세벌식은 컴퓨터에도 알맞아/세벌체를 기본 자형으로 확정

제11장 사람답게 살고 싶어 - 종교관, 인생관
하느님의 발견/구도자의 심정/내가 존경하는 분들/임어당과 나/사회생활과 가정생활/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고/돈보다 소중한 것들/미리 써 둔 유서

제12장 내가 좋아하는 것들
꿩 사냥과 탁구/한때는 골동품도 모았지만/단순한 것이 좋아/의식주 생활/고독은 즐겁다/시간은 생명이다/건강 관리

제13장 내 가슴은 영원히 뜨겁다
장님과 맹인/실명자에게 재활의 꿈을/신체장애자를 도울 줄 아는 사회/그리운 북녘땅/공 박사가 빨갱이가 되었어?/일흔일곱에 쓴 참회의 일기/내 인생을 감싸 준 사람들

제14장 끝말
나는 내 식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다

부록
자료1 공병우 정신의 10가지 기둥과 업적
자료2 한글학회에서 공병우 박사 사후 20주년에 정리한 공병우 박사 해적이



책소개

1965년 4월 11일자 《한국일보》에 〈한국의 유아독존 10화〉라는 연재물이 올라 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고집쟁이’ 10명을 꼽은 것인데, 그 가운데 6위가 공병우였다. 반평생을 안과 의사로서, 또 반평생을 한글 타자기 발명가이자 한글 기계화 운동을 이끌었던 운동가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불의에 맞서 끊임없이 싸운 그의 삶의 궤적은 지금까지도 울림을 준다. 《나는 내 식대로 살았다》는 공병우 선생의 자서전으로,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박정희 군사정권과 대립하며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던 근현대 인물의 개인사일 뿐만 아니라 한글 기계화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공병우 선생은 1949년 처음으로 타자기를 개발한 뒤부터 수많은 기계를 발명하여 한글 기계화를 이끌었다. 6.25 전쟁 중과 휴전협정에서도 쓰였던 한영 타자기, 일본어 타자기는 물론이고 4벌식과 5벌식에 견주어 가장 빠르다고 인정받았던 속도 타자기, 장님들을 위한 맹인 점자 타자기, 새로운 인쇄 방식으로 조판 속도를 향상시킨 사진식자기, 장애인을 위한 한손용 워드프로세서, 타자기용 국산 활자 등을 개발하여 한글 기계화에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안과 의사이자 서울 한복판에 최초의 안과병원을 설립한 병원장이자 발명가로서 한글 시력검사표를 만들고, 누도검사법을 개발하였으며, 최초의 국산 콘택트렌즈를 개발하고, 맹인 부흥원을 설립하고 점자 타자기를 보급하여 맹인들의 자활을 돕기도 하였다. 또한 미국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가며 한글 소프트웨어 개발을 이끌었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젊은 과학자들을 지원하며 죽기 전까지도 한글 기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고집쟁이’이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공병우 선생의 기록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료들을 추가하였고, 공병우타자기주식회사 대표로서 공병우 선생과 한글 기계화 운동을 함께 했던 송현 선생의 글을 부록으로 실었으며, 한글학회에서 정리한 연보를 추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저자 : 공병우 

 

1906년 평안북도 벽동에서 팔삭둥이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나라 사랑에 앞장서며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발명한 발명가였다. 의과 대학도 다니지 않은 채 조선 의사 검정 시험에 합격하여 한국인 최초의 안과 전문의로서 안과 병원을 세웠고, 1938년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을 만난 것을 계기로 한글 기계화 연구를 시작하였다. 1949년 미국에서 쌍초점 원리의 발명 특허를 얻고, 실용적인 한글 타자기를 발명한 뒤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바탕으로 한글 텔레타이프, 점자 한글 타자기, 맹인용 한글 워드프로세서, 한영 타자기 등을 개발하고 타자기 활자 국산화에 성공하였다. “누도 기능 검사법”으로 안과 의사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남겼고, 한글 기계화를 이끌며 한글 사랑에 몸바쳐 온 공병우 박사는 “내가 죽거든 쓸모 있는 장기는 환자들에게 모두 기증하고 몸은 해부학 교실에서 학생들 실습용으로 쓸 수 있도록 의과 대학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5년 3월 7일 평생의 소원이었던 과학적인 세벌식 글자판 통일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금관 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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