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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청렴이야기
작성자 박순옥 등록일 14.03.28 조회수 241

 

[ 역사속 청렴부패 이야기 ] - 1

- 양기부부, 재물 경쟁을 벌인 외척의 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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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관오리, 그들의 속성은 비슷하다.

권력을 장학하려 하고, 자신의 측근들만 기용하고, 공공연히 뇌물을 받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모으는 것이 인생 최대 목표인 양 살아간다.

아래는 전형적인 탐관오리였던 ‘양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국 왕조 중 하나인 동한에 그러한 ‘탐관오리’의 대명사인 양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당시 외척 세력 덕에 세도를 누리던 양기는 전형적인 부잣집 망나니였다.

양태후(양기의 여동생)가 충제의 수렴첨정에 들어가면서 양기는 자연스럽게 정치를

보좌하기 시작하였고, 그로 인해 득세한 후 행여 사람들이 자신의 권세가 얼마나 큰 지

모를까봐 위세를 떨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아홉 살 난 황제가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자(양기)가 발호장군이구먼”이라는 말

한마디를 하자 양기는 대담하게 공개적으로 독을 쓰게 하여 그날로 황제를 독살했고,

조정의 재정에 부정한 방법으로 손을 대 엄청난 돈을 빼돌렸으며, 억울한 사건을 조작하여

부호들을 쥐어짜는 방법을 동원하여 재산을 축적했다.

 

그와 그의 부인 손수는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축적하는 능력을 출중했으나,

사람노릇이나 인간적인 면에서는 백치나 마찬가지였다.

영원히 자기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생각했던 환제의 나이도 28세가 되어,

혼란을 거듭하는 조정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던 차에 양기가 자객을 시켜

환제의 주변 인물을 해치려다 미수에 그친 일이 일어났다.

환제는 마침내 공개적으로 명령을 내려 1,000여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양기의 집을

포위하게 했고, 창졸지간에 벌어진 일에 양기부부는 도망도 치지 못하고

자결함으로써 인생을 마치고 말았다.

<참고도서 : 청렴과 탐욕의 중국사(사식 지음, 돌베개, p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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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이렇게 극단적이고 공개적인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단순한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가끔 뉴스를 장식하는 권력층 측근들의 부정부패 소식을 접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현대사회에서도 이 이야기는 많은 시사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이기적이고 비정한 이야기가 심상치 않게 들려와서 소신을 가지고 성실하게 삶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구성원들의 가치체계가 건강한 윤리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과 만족도가 높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자신의 위치가

가지는 영향력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각자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참조 블로그: http://blog.naver.com/cjdfuawjdcor?Redirect=Log&logNo=180068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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