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키메데스 -- 과학수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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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22.05.18 | 조회수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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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212)는 기원전 287년 시라쿠사(Syracusa, <영> 시실리, Sicily)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로서 아르키메데스가 태어나기 500년 전부터 그리스의 식민지였다. 그 무렵 그리스의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그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있는 왕립학교에서 공부했다. 이 학교는 당시 가장 높은 수준의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자 아르키메데스는 이론을 실용 면에 응용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시라쿠사 왕의 눈에 들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마 그는 시라쿠사 왕의 친척이었던 모양이다.
왕관의 수수께끼
시라쿠사 왕 히에론 2세(Hieron Ⅱ)는 용감한 전사였고 또 신앙심 깊은 독신자(篤信者)이기도 했다. 그는 전장에서 승리를 거둘 때마다 축하하는 뜻에서 신들을 위하여 선물을 바쳤다. 예를 들면 어느 승리를 거뒀을 때는 신전을 하나 세웠고 또 다른 승리 뒤에는 공공용 제단을 만들기도 하였다. 어느 때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그는 불사의 신들 신전에 놀라운 만큼 값비싼 금으로 왕관을 만들어 바치기로 하였다. 왕은 기술 좋은 금세공사(金細工師)를 시켜서 이것을 만들도록 명령하고 회계관을 시켜 이 세공사에게 필요한 분량의 금을 주게 시켰다. 지정된 기일 안에 세공사는 왕관을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 왕은 구석구석 살펴보았으나 나무랄 데가 없는 솜씨여서 지극히 만족했다. 그러나 얼마 후, 금세공사가 받았던 금을 전부 쓰지 않고 그 일부를 가로채어 그 대신 은을 섞어 왕관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소문은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왕은 정말로 세공사가 그런 짓을 했는지 의심을 하여 보았지만, 그 진위를 가릴 방도가 없었다. 사실 왕관의 무게와 금세공사에게 넘겨준 금의 무게가 똑 같았기 때문에 아무리 왕관을 조사해 보아도 그 속에 은이 섞여 있는지 어떤지를 알 도리가 없었다. 은이 그 속에 조금 섞여 있다고 해도 반짝이는 금빛은 조금도 다르지 않고 보기에 순금과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히에론 2세는 그 소문이 정말인가 거짓인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아름다운 왕관을 부수거나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아르키메데스를 불러서 금세공사에 관련된 혐의를 조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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