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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자들 3 -- 사회
작성자 *** 등록일 22.05.18 조회수 18

발견자들 3 사회 

세계를 발견하고 인류를 발전시킨 탐구와 창조의 역사 

대니얼 J. 부어스틴  | EBS BOOKS | 2022년 03월 20일

 

 

목차

독자에게 전하는 글

4편 사회

13부 지식 공동체의 확대
60. 잃어버린 기억술
61. 지식인의 제국
62. 본뜨려는 충동
63. ‘인위적인 기록 기술’
64. 지역어의 공동체
65. 책의 획기적인 변형
66. 서적의 대중화
67. 이슬람 세계라는 섬
68. 하나의 세계 문학 공동체를 향해

14부 과거를 드러내다
69. 역사의 탄생
70. 기독교가 방향을 정하다
71. 역사 기록의 수정
72. 폐허의 탐구자들
73. ‘죽은 자를 깨우다’
74. 시간의 위도
75. 선사시대의 발견
76. 숨겨진 차원: 치료법이 된 역사

15부 현재를 조사하다
77. ‘모든 인류는 하나다’
78. 미개인이 준 충격
79. 문화의 과학
80. 증대하는 국가의 부
81. 숫자에서 배우다
82. 무한대와 무한소

참고 문헌
감사의 말
찾아보기
저자에 관하여

 

저 : 대니얼 J. 부어스틴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인 대니얼 J. 부어스틴은 미국 의회 도서관 명예관장이었으며 1979년부터 1987년까지 의회 도서관 운영 책임을 맡았다. 이전에는 미국 국립 역사·기술 박물관 관장과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수석 역사 연구원을 역임했다. 그는 또한 시카고 대학에서 ‘프레스턴 및 스털링 모턴 석좌교수’로 25년 동안 역사학 강의를 했다.
부어스틴은 미국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에서 태어나 오클라호마주에서 자랐고, 하버드 대학에서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했으며, 예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또한 옥스퍼드 대학 베일리얼 칼리지(Balliol College)의 로즈 장학생으로 졸업 시험에서 ‘두 과목 최우등생’의 명예를 얻었고, 런던의 이너 템플(Inner Temple) 변호사협회 회원 자격을 획득했으며,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변호사협회 회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소르본 대학 미국사 최초의 재직 교수와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미국사 교수를 비롯해 로마 대학, 교토 대학, 푸에르토리코 대학, 제네바 대학의 객원 교수로 활동하는 등 미국과 세계 전역에서 널리 강의를 해 왔다. 그는 책을 저술할 때마다 편집인 역할로 늘 도움을 주는 루스 프랭클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다.
부어스틴의 주요 저서로는 미국 문화의 특징을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밝혀내면서 미국 역사의 새롭고도 광범위한 관점을 담은 3부작이 대표적이다. 첫째는 밴크로프트 상(Bancroft Prize)을 받은 『미국인들: 식민지 경험The Americans: The Colonial Experience』(1958), 둘째는 프랜시스 파크먼 상(Francis Parkman Prize)을 받은 『미국인들: 국민적 경험The Americans: The National Experience』(1965)이며, 셋째는 역사학 분야의 퓰리처상과 ‘이달의 북 클럽(Book-of-the-Month Club)’의 주요 저서로 뽑힌 『미국인들: 민주적 경험The Americans: The Democratic Experience』(1973)이다. 그 외에도 미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로 채택된 『미합중국의 역사A History of the United States』(1980), 『창조자들The Creators』(1993), 『탐구자들The Seekers』(1998) 등이 있으며, 그의 저서들은 모두 전 세계 20개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책 속으로

활자본이 나오기 전에는 기억이 일상생활과 신비주의 학문을 지배했으며, 또한 ‘모든 기술을 보존하는 기술’이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개개인이나 공동체의 기억력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지식을 전달했다. 수천 년 동안 개인의 기억은 오락과 정보, 기술의 영구 보존과 완성, 상업의 관례, 여러 직업의 수행 등을 관리하는 수단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억에 의해서, 그리고 기억 속에서 교육의 결실을 수확하고 보존하며 저장했다.

그러나 지식인들을 연결시켰던 라틴어는 각국의 지식인들과 민중 사이의 장벽이 되었다. 집이나 시장에서, 그리고 대중의 유흥에서 쓰는 말은 전혀 다른 언어였다.

유럽에서는 인쇄술의 등장이 가동 금속활자로 인쇄하는 활판인쇄술을 의미했다. 중국과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목판인쇄가 중요한 발명이었으므로 인쇄술의 등장은 목판으로 인쇄하는 목판인쇄술을 의미했다. 따라서 서양의 ‘인쇄’와 동양의 ‘인쇄’를 같은 의미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인쇄된 책의 승리는 곧 대중 언어의 승리를 불러일으켰고, 이 대중 언어는 유럽 전체의 지식 언어가 되었다. 인쇄된 지역어 문헌은 전혀 다른 2가지 사고방식을 형성하게 했다. 즉 민주화를 실현하면서도 지방화도 이루었다.
---「13부 지식 공동체의 확대」중에서

서구의 위대한 종교도 반복되는 동물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정반대의 길을 찾아냈다. 힌두교와 불교는 역사에서 벗어나는 길을 추구한 데 반해,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역사 속으로 향하는 길을 추구했다. 경험에서 도피하는 약속 대신에 경험에서 의미를 찾았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둘 다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이 세 종교는 모두 윤회의 세계에서 역사의 세계로 옮겨 가는 극적인 전환을 보여 주었다.

과거를 드러내는 관점에서 빙켈만은 탐구자라기보다 발견자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유럽에 고대 문명의 매력에 눈을 뜨게 해 주었으나 자신은 그저 희미하게 보았을 뿐이다. 빙켈만은 다른 사람들을 탐구할 수 있도록 이렇게 유도했다. “내가 고고학을 위해 발견한 것은 완전히 새로우며 예상하지 못한 세계이다!”

그러나 성서에 기록된 시대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런 의문을 품은 기독교인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오늘날에는 놀라울 수 있다. 그렇지만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런 의문이 무의미한 듯 보였다. 역사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전에도 무슨 일이 정말 일어났던 것일까? 19세기 중반까지도 ‘선사시대’라는 말은 유럽어에 없었다. 그동안 생각이 깊은 유럽인들은 어쨌든 그들의 역사적 시야에서 지구의 과거를 대부분 제외하고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1818-1883년)는 국가들이 일어나고, 식민지가 늘어나고, 공장이 확대되며, 자본주의가 급성장하는 애덤 스미스, 제임스 와트, 토머스 제퍼슨 등이 활동했던 세기의 말기에 성장했다. 그는 당시에 서유럽에서 극적으로 폭발하고 있던 생산력 속에서 과거의 숨겨진 차원을 발견했다.
---「14부 과거를 드러내다」중에서

그러나 교양 있는 유럽인들은 마침내 ‘고전적’이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벗어나 전 세계가 문명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케인스가 일깨워 주는 영향력은 다른 학문의 중요한 사상가들의 영향력처럼, 그의 이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케인스가 내세운 경제의 총수요라는 개념과 정부의 개입에 관한 제안은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국민소득에 관한 더 완전하고 정확한 통계를 수집하게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케인스의 끊임없이 빛나는 정신과 경제계의 인간 역할에 대한 생각이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을 경제계의 첫 번째 정통성에서 구해 낸 사실이었다.

20세기에, 공적인 통계 수치는 국민 복지와 국제관계의 토론을 지배하게 되었다. 국민소득이나 1인당 소득, 국민총생산, 성장과 발전 속도, 선진국과 후진국, 인구 증가 등의 개념들은 케틀레와 그의 제자들이 물려 준 유산이었다.

원자의 신비는 20세기를 괴롭혔다. 2,000년 동안 ‘원자’는 철학자들의 관심사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주제였다. 원자의 어원인 그리스어 ‘atomos’는 물질의 최소 단위를 의미했으며, 더는 쪼갤 수 없는 입자라고 여겨졌다. 이제 원자는 흔히 쓰이는 말이 되었고 전례가 없는 위협과 약속이 되었다.
---「15부 현재를 조사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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