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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교실 게시판입니다.
숲속 인생 산책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2.10.25 조회수 18

 

 

 

숲속 인생 산책

생존형 숲해설가 나무공부 분투기

김서정 | 동연출판사 | 2022년 08월 31일 



목차


책을 내면서

자생지와 충북 괴산 송덕리 미선나무
― 사는 곳이 옮겨진다는 것
올해의 컬러와 경기도 양평군 주읍리 산수유
― 죽은 회색, 살아 있는 노란색, 두 색이 만드는 잔인한 4월의 희망
생존력과 전남 여수 영취산 진달래
― 나약한 마음이 들면 숲으로 가요
천상의 화원과 경기도 남양주 천마산 얼레지
― 패러독스가 안겨준 야생의 에너지
권태와 제주도 어승생악 마가목
― 선형(線形)적 인생과 순환(循環)하는 나무
관계와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 팥꽃나무
― 나무뿌리에서 터득해가는 관계의 본질
깨달음과 충북 청주시 화장사 가침박달
―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게 깨달음일지도 몰라
정확한 사람과 서울 선유도공원 등나무
― 나무 동정이 가져다줄 정확한 사람
선택과 경기도 장흥숲길 은사시나무
― 은빛 사이사이 검은 마름모에 새겨 넣은 그리움
공부와 경남 창녕 우포늪 마름
― 나무가 연결시킨 ‘나는 누구인가?’
소통과 서서울호수공원 쥐똥나무
― 최대의 생존을 위해 최소의 것만 취하는 게 소통
이름과 전북 전주수목원 이나무
― 수목원이 건네준 선물은 내 호칭 껴안기
착각과 서울대공원 쪽동백나무
― 가짜 인식에 참말을 내리는 나무들
느낌과 경기도 가평 잣향기푸른숲 잣나무
― 사실에서 느낌으로 가게 해주는 나무
이데올로기와 강원도 양구 국립DMZ자생식물원 함박꽃나무
― 이데올로기를 증발시킨 식물
안목과 서울 강북구 우이동 솔밭공원 쇠뜨기
― 나무의 비언어적 소통이 보태줄 안목
비교와 인천시 강화군 석모도수목원 다래
― 나무 비교가 가져다줄 최고의 은유
긍정과 국립세종수목원 나무고사리
― 나무가 알려줄지도 모를 새로운 긍정
경계와 전남 국립곡성치유의숲 칡꽃
― 경계를 구분 짓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숲
분투와 경기도 오산 물향기수목원 모감주나무
― 분투하는 식물에 대한 예의
숨결과 강원도 삼척 덕봉산 순비기나무
― 나무가 만들어주는 숨결의 은유들
반복과 서울 종로구 백석동천 고마리
― 게으른 반복을 퇴고시키는 식물
의심과 경북 안동 병산서원 배롱나무
― 속죄를 촉구한 맑은 나무
소설과 충북 제천 의림지 산초나무
― 상상력에 불을 지필 나무 답사
진심과 경기도 파주 율곡수목원 망초
― 진심을 파헤쳐줄 그릇된 패러다임
기억과 충남 아산 신정호 탱자나무
― 존재감을 높게 만들어주는 나무
억지와 인천대공원 자귀나무
― 소화하기 어려운 칸트를 넘어 숲으로 나무로
장어와 전북 고창운곡람사르습지 청미래덩굴
― 회복탄력성의 롤 모델은 자연
독립적 삶과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 살구나무
― 자기 치유로 고향을 사는 나무
홍보와 국립청도숲체원 서어나무
― 이승의 구원을 도와줄 나무
변화와 경기도 고양시 영글이누리길 뚱딴지
― 작용과 실체의 변화를 인식시켜주는 식물이여, 감사!
목숨과 경복궁 향원정 화살나무
― 슬픈 삶과 억울한 죽음을 다시 보게 하는 나무
스타와 경기도 연천 나룻배마을 대추나무
― 별은 나무처럼 스스로 빛난다
독림가와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 메타세쿼이아
― 내가 나무이고 나무가 나일 수 있을까
부루 라이또와 인천 부평 신트리공원 히말라야시다
― 가로등 불빛에 가로수가 보여요
자살과 서울 낙산공원 박태기나무
―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식물
신화와 강원도 원주 동화마을수목원 물푸레나무
― 살아가는 동안 열심히 살아!

참고도서


저 : 김서정

1966년 강원도 장평에서 남자로 태어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여기서 굳이 ‘남자’라고 밝히는 것은 많은 분들이 이름만 보고 여자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1992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 타이틀을 얻게 된 뒤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가입하고는 장편소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을 출간했다. 판매 저조와 문학 재주가 미미함을 알고 출판사에 몸담았다. 출판 전 과정에 걸친 일은 모두 해보다가 사십대에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외주 편집자 및 윤문 작가로 생계를 이어가던 도중 북한산을 만나게 되었고, 산 밑에서 막걸리나 마시던 사람이 일수 도장 찍듯이 북한산을 다녔다. 그때 문득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차올랐고, 그 결과 소설이 아닌 산문집 《백수산행기》,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다이어트》, 《분단국가 시민의 평화 배우기》를 출간했다. (그 긴 과정에서 어린이를 위한 인물 이야기 《신채호》, 《김구》, 《마의태자》도 냈다.)

글쓰기가 삶에 큰 힘을 준다는 것을 알고 이를 정리한 《나를 표현하는 단숨에 글쓰기》를 내고는 도서관, 신문사 등에서 글쓰기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글쓰기 업그레이드 실천법인 《쓰면 는다》와 《숲토리텔링 만들기》를 내고는 영역을 넓혀 영역을 넓혀 KBS <오늘아침1라디오>에서 ‘숲으로 가는 길’ 코너를 100회 이상 진행해오고 있으며, 숲 관련 단체나 기업에서 글쓰기 수업 및 시민들을 만나는 현장 숲해설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책 속으로


“이 나무가 뭐예요, 저 나무가 뭐예요, 이 꽃이 뭐예요, 저 꽃이 뭐예요?” 아는 나무면 덜 긴장을 하는데, 모르는 나무면 떡갈나무 각두의 비늘조각처럼 신경이 곤두선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펴보는데 일말의 단서조차 낚아채지 못하면 얼굴이 붉어지며 죄인이 된 듯 나약한 목소로 말한다. “잘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숲해설가라면서요?”라고 되묻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개는 “나무가 비슷비슷하니 그 나무가 그 나무 같아 보여요. 정말 한눈에 아는 분들 보면 신기해요”라고 말하는데, 이럴 때면 “맞아요. 십 년은 공부해야 감이 좀 올 것 같아요. 전 이제 3년밖에 안 됐어요”라며 부끄럽게 치미는 수치심을 나 좋으라고 슬쩍 뭉개버린다.

이처럼 방어적 태도로 살다 보니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라는 나무처럼 생장을 해서 위대한 성공을 이룬 위인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작가 타이틀에서도 통용되는데, “아니, 작가가 그런 말도 몰라요?”라고 언짢아하면 “네. 모르는 말들이 더 많습니다”라며 화를 머금은 미소로 응대만 하고 비굴하게 넘어간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애당초 내 안에 없다고 치부하면서 터득한 내 삶의 자기계발 툴(tool)인 것이다.
---「이름과 전북 전주수목원 이나무」중에서

비교하면 안 된다는 논리에 나름 반박의 근거를 가지고 사는 게 만족스러웠던 내게 식물의 세계를 알아야 하는 삶이 펼쳐지면서 비교 인식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다가와 불행해질 때가 있다. 뻗은 가지 모양이 작살처럼 보여 작살나무로 보고 있는데 잎 전체에 톱니가 없어 좀작살나무라 하고, 연못가에서 핫도그 열매를 달고 있는 식물은 부들이겠거니 하는데 열매와 암꽃이삭에 거리가 있어 애기부들이 되고, 마로니에공원이라고 해서 느닷없이 고독해지는데 열매에 가시가 없어 일본칠엽수라 하고, 봐도 봐도 떡갈나무인지 신갈나무인지 갈참나무인지 졸참나무인지 굴참나무인지 상수리나무인지 곧바로 이름이 튀어나오지 않는 참나무과 앞에만 서면 위축되는 식물 동정이 새로운 삶을 버겁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조금씩 나무 공부에 진전이 있고, 불규칙하지만 거기서 밀려드는 기쁨이 식물을 몰랐던 시절에 깨달았던 기쁨의 질(質)보다는 그 진동수가 심하게 빠른 것 같아 블랙홀처럼 빨려드는지 모르겠다.
---「비교와 인천시 강화군 석모도수목원 다래」중에서

망초가 눈을 확 사로잡은 건 내가 망할 놈의 인간이라서기도 했지만, 그 단초는 율곡수목원의 율곡이었고, 그 연결고리를 풀면 율곡에서 사단칠정(四端七情)이, 사단칠정에서 엄마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밤에는 소설만 쓰고, 낮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만 읽던 무렵, 엄마는 도서관에 가는 내 손길을 붙잡고 그 옆에 있는 뷔페로 들어갔다. 동네 분의 결혼식이었는데, 얇은 봉투 하나 건네주고 두 사람이 왔으니 민망하기는 했지만, 엄마는 나보고 많이 먹고 가라고 했다. 배부른 돼지가 되어 도서관에 앉아 소설에서는 감정 묘사가 중요하다면서 사단칠정 관련 책들을 보고 있던 내가 얼마나 한심스러웠는지 비애만 가득 흘러넘쳤다. 그래도 자존심을 세운다며 물질〔氣〕보다는 정신〔理〕이 우선이라며 보낸 세월, 그 철없던 어두운 내면을 나는 율곡을 마주할 때마다 떠올린다.
---「진심과 경기도 파주 율곡수목원 망초」중에서

답사를 마치고 입구로 나오는 길가에서 겨울에 더욱 아름다운 자작나무가 나를 사열하는 것 같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물푸레나무에 빚진 마음의 부채를 덜어낸 듯, 즉 내 가식을 가득 싼 껍질들이 제대로 벗겨져 본심이 드러난 듯, 그래서 살려는 힘이 솟구쳐 그런 것 같다. 그때 자작나무에 걸려 있는 〈빨강 머리 앤〉 주인공 그림과 거기에 적혀 있는 “정말 멋진 날이야,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라는 문구가 눈부시게 나를 부풀게 했고, 계곡에서 다시 마주한 물푸레나무들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살아가는 동안 열심히 살아! 오, 그저 고맙고 고맙다, 나무들이여!
---「신화와 강원도 원주 동화마을수목원 물푸레나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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