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의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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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2.10.31 | 조회수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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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까지의 외과수술이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하고 「잠들게 하는」 물질이 하나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픔을 없애기 위해서 인도산 대마나 아편과 같은 소수의 마시는 약이 쓰였고 때로는 환자에게 알코올음료 - 럼(rum) 아니 브랜디와 같은 –를 많이 마시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량의 알코올음료를 마시고 환자는 반쯤 취해서 녹아떨어지고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환자가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았으므로 수술하는 동안 완력이 센 남자들이 환자를 꼼작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 상례였다. 고통이 매우 심해서 이 쇼크로 죽는 환자도 많았다. 오늘날에는 마취제(痲醉劑)라 불리는 물질이 많다. 이것을 사용하면 환자는 아주 깊은 「잠」에 빠지고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아픔이나 그 밖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일부 마취제가 인간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
데이비, 소기의 마취 작용을 발견
18세기 말경에 이르러 새로운 기체가 발견되었다. 이 기체의 성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기체가 인간에게 어떤 효과를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798년에 여러 가지 기체에 대한 환자의 반응을 조사하는 연구소(Pneumatic Institute)가 브리스틀(Bristol)에 설립되었고, 이윽고 많은 사람이 이 연구소에서 새로운 「약용 공기」에 의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연구소의 초대 소장은 험프리 데이비(Humphrey Davy, 1778~1829)라는 청년으로 그는 나중에 영국의 지도적 과학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데이비는 특히 「소기(笑氣, Laughing gas) 즉 이산화질소(N₂O)에 흥미를 느꼈다. 이 가스는 지금도 치과의사가 이를 뺄 때 환자에게 마시게 하는 일이 있다. 데이비는 소기를 조금 만든 다음 이것을 자기가 마셔보기도 하였다. 이 경위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가스를 명주로 만든 자루에 넣고 미리 콧구멍을 막거나 폐 속을 텅 비게 하지 않고 3쿼터 트기(quart, 3.42ℓ)를 30초 이상 마셨다. 처음에는 현기증이 났으나 점점 모든 감각을 잃고 흡사 술에 취하기 시작하는 단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나중에 그는 이 가스를 더 오랫동안 마셨다. 이번에는 웃고 싶은 기분이 되고 빛나는 점이 눈앞을 빙빙 돌며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매우 기분이 좋았다. 곧 그는 의식을 잃어버렸고 실로 즐거운 생각이 떠올랐다. 신기하게 연결되고 변하는 관념의 세계 속으로 빠졌다.』 (데이비, 《험프리 데이비 경의 생애에 관한 회고》 ; J. Davy, Memoirs of the Life of Sir H. Davy, 1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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