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열정, 미지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미시의 세계를 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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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4.05.07 | 조회수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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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로 접어들면서 과학은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면서 고대의 그림자를 거두어내며 새로운 자연 탐구 방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렌즈를 장착한 암상자를 새로운 보조 화구로 사용하자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즈음 미술은 고전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일상의 풍경으로 관심을 옮겨가고 있었다.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오브스쿠라(Camera Obscura)’는 암실 한 곳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반대쪽 면에 외부 모습이 거꾸로 투사되는 원리를 응용한 일종의 카메라이다. 상이 맺히는 면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상의 윤곽을 덧그리면 실사에 더 가깝게 묘사할 수 있다. 카메라오브스쿠라는 18~19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회화의 보조 수단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화가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는 렘브란트와 함께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이끈 거장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마흔세 살에 병마로 쓰러질 때까지 페르메이르가 남긴 작품 수는 40점이 채 안 되지만, 그의 그림은 모두가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뛰어나다. 병약한 체질도 다작을 막았겠지만, 작품의 치밀함으로 보아 한 점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많이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절묘한 조화와 매우 섬세한 묘사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페르메이르가 카메라오브스쿠라를 사용해서 사물의 모습을 투사하여 그렸을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도 많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우유를 따르는 여인’ ‘레이스를 뜨는 소녀’ 등 주로 여성의 일상을 화폭에 담던 페르메이르가 1668년과 1669년 연이어 남성을 단독으로 그린 두 작품을 선보였다. 바로 ‘천문학자’와 ‘지리학자’이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 가운데 남자 모델이 등장하는 것은 이 둘뿐이다. 그림 속 주인공의 성별뿐만 아니라 그 분위기도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페르메이르가 당시에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에서 영감을 받아 전작들과 확연히 다른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림의 모델은 과학자일 가능성이 크다. 두 남성이 동일인이라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지만, 이에 반해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그의 동갑내기 동네 친구인 레이우엔훅(Anthony van Leeuwenhoek, 1632~1732)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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