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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고압·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펼쳐지는 ‘생명체의 파노라마’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4.06.12 조회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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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1828~1905)1869년에 발표한 공상과학 소설 <해저 2만리>에서 는 프랑스어 (Lieue)’의 번역어이다. 이것은 옛날에 유럽에서 사용하던 길이 단위로 보통 어른이 한 시간 동안 걷는 거리를 말한다. 우리가 익숙한 미터법으로 어림하면, 1류는 4정도이다. 그러므로 2만류는 얼추 8라는 계산이 나온다. 지구 둘레가 4남짓이니까 단순히 거리로만 따지면, 주인공은 잠수함을 타고 지구 두 바퀴를 돈 셈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우리나라 대표 민요 아리랑노랫말 일부다. 여기에 나오는 십 리는 4에 해당한다. 따라서 ‘2만류‘20만리가 돼야 맞는다. 개화기 초기에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하면서 생긴 오역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1리가 우리의 열 배 4이다. 한국에 최초로 소개된 과학 소설로 오랫동안 굳어진 제목이라 인제 와서 고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런 사실만은 분명하게 알렸으면 한다. 아무튼, 천재 작가의 상상력은 1세기가 지나서 현실이 된다.

 

 

첫 심해저 탐사 

 

 

보통 수심이 2보다 깊은 바다를 심해저라고 한다. 여기서 돌발 퀴즈! 달과 심해저 둘 가운데 인류가 어디를 먼저 가보았을까? 1969720, 세계인이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다.

달에 인류의 첫발을 내디디며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1930~2012)한 인간에게는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고 말했다. 인류 역사 내내 신비와 동경의 대상이었던 달이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고, 천문학을 비롯한 과학 대중화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아폴로의 명성은 미생물 영역에까지 미쳐, 그해 유행했던 눈병을 흔히 아폴로 눈병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특정 바이러스가 결막에 감염하여 일으키는 이 눈병의 정식 명칭은 급성 출혈성 결막염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사는 지구 심해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달에 착륙하고 8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흥미롭게도, 쥘 베른도 <해저 2만리>4년 앞서 1865년에 <지구에서 달까지>를 발표했다.

19772,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잠수정 앨빈(Alvin)가 약 3깊이에 있는 갈라파고스 단층에 도달했다. 수심이 10m씩 깊어질 때마다 압력은 1기압씩 높아진다. 따라서 3물속에서는 300기압이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된다. 이는 어른 엄지손톱만 한 넓이에 300무게를 올려놓은 셈이다. 이런 엄청난 외압을 견딜 수 있는 잠수정을 제작하려면 특수한 소재와 기술이 필요하다.

앨빈호에 탄 과학자들은 뜨거운 바닷물이 솟구쳐 나오는 열수구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쉽게 말해 열수구는 심해저 온천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 형성 과정은 다음과 같다. 깊은 바다 밑바닥 아래로 스며든 바닷물이 마그마를 만나 섭씨 400도 정도까지 가열된다. 가공할 수압 때문에 물이 끓지 않고 대신 액체와 기체의 중간 상태인 초임계유체가 된다. 이렇게 되면 물은 다른 물질을 더 잘 녹일 수 있어 주변 암석 성분을 한껏 머금게 된다.

이런 물이 차가운(섭씨 2~4) 심해수로 분출되면 물에 녹은 암석 성분 상당량이 굳어 고체가 되는데, 이들이 쌓여 굴뚝과 같은 구조물을 이룬다. 열수구에서 뿜어지는 물에는 황화수소와 철을 비롯한 여러 광물이 녹아 있어 보통 색이 검다. 그래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이 물기둥을 블랙 스모커(black smoker)’라고 부르기도 한다.

더욱 놀라운 광경은 열수구 주변에 사는 다양한 생물 무리였다. 그 가운데 흡사 위쪽에 빨간색 잎이 달린 나무와 같은 생명체는 압권이었다. 이 순간 전까지 심해저에는 생물이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모두 경이로움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치라이트 빛줄기 속으로 펼쳐지는 신기한 생명체의 파노라마를 상상해 보면 그들의 감동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더더욱 놀라운 건 이들이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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