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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를 들이켜 ‘맹신’을 깨버린 학자…의과학은 그렇게 발전했다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4.07.13 조회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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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이르기까지도 서양에서 질병은 개인이 저지른 죄악과 악행의 대가로 받는 천벌이라는 고정관념 속에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 시궁창에서 악취 형태로 나온 악마의 소행이라고 믿기 일쑤였다. 상당수 의사도 사체나 배설물, 쓰레기 따위가 썩을 때 나오는 나쁜 공기’, ‘미아즈마(miasma)’가 감염병 원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1840년대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가 의사들이 손을 제대로 씻지 않고 출산을 돕기 때문에 산모가 감염에 더 취약해진다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지금으로서는 경악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시신을 다룬 후에도 손을 씻지 않고 그대로 진료에 참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동료 의사들은 제멜바이스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을 귀담아듣기는커녕 조롱과 비난을 쏟아부었다. 결국, 그는 근무하던 병원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에 가서도 걱정 어린 충고를 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차가운 따돌림뿐이었다.

 

수술실 환경은 르네상스 시대나 19세기나 기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수술실의 침대보와 수술복은 제대로 빨지 않고 사용했다. 피 묻은 가운이 오히려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영국의 저명한 의사 존 에르흐센(John E Erichsen)조차도 상처 자체에서 나오는 미아즈마가 공기 중에 축적되어 감염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그는 감염된 상처가 있는 환자가 병실의 병상 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 공기가 미아즈마로 포화한다는 추론까지 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걸출한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발효는 효모에 의한 생물학적 반응임을 입증하면서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아 막연히 신비스럽게 여겼던 많은 현상을 미생물과 연관지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소식은 바다 건너 영국에도 전해져 젊은 의사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에게 울림을 주었다. 그는 발효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과정이 상처에서도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미생물이 상처를 통해 체내로 들어와 감염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리스터는 손을 씻는 수준을 넘어 훨씬 적극적으로 예방책을 모색하다가, 그 시절 하수구 악취 제거에 사용하던 석탄산(페놀)을 발견했다. 냄새를 없앤다면 미생물도 파괴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는 1865년부터 수술 도구와 붕대에 석탄산 용액을 분무한 다음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소독 방법을 1년쯤 사용한 리스터는 임상 데이터를 모아 1867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영국 의료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뜻밖에도 리스터 소독법의 도입과 확산에 이바지한 건 독일(프로이센)이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중 부상자를 치료하던 몇몇 의사가 이 방법을 사용하면 생존율이 훨씬 올라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종전 후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리스터 소독법을 사용하는 유럽 의사들이 빠르게 늘어갔다. 영국은 맨 마지막 사용국이었다. 이처럼 2000년 넘게 다져진 미아즈마에 대한 고정관념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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