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이 사람을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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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4.09.20 | 조회수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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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2012년 8월12일자 표지(사진)는 이채롭다 못해 낯설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린 소묘 ‘인체 비례도(Vitruvian Man)’를 패러디해서 주인공 남성을 각종 미생물의 집합체로 표현했다.
1843년 영국 런던에서 창간한 이 잡지는 이름 그대로 경제나 이와 관련된 정치 이슈를 주로 다루는데, 어떤 연유에서 10년 전 그 책뚜껑은 미생물로 장식했을까?
그 무렵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을 총칭하는 ‘휴먼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장내 미생물이 인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학적으로 제대로 밝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마이크로바이옴’, 경향신문 2022년 1월21일자 14면 참조). 이를 방증하듯 그해가 다 가기 전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똥은행’이 문을 열면서 장내 미생물 연구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똥은행’ 설립 이유
‘시디프(C. diff)’는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리(Clostridioides difficile)라는 세균의 공식 이름, 곧 학명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자연환경과 인간을 비롯한 동물 분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시디프는 세포를 파괴하고 염증을 일으키는 독소를 생산한다. 발병하면 복통 및 메스꺼움과 함께 작은 설사를 유발한다. 더 악화하면 대장 염증과 설사가 극심해지면서 경련과 발열 등이 나타난다. 인구의 10% 정도가 시디프를 장 속에 지니고 있다고 추정하는데, 다행히 건강한 사람에게는 시디프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건강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서 시디프는 그저 그런 구성원이다. 하지만 생태계가 교란되면 이 세균의 태도가 돌변한다. 예를 들어 경구용 항생제를 장기간 먹으면 표적 병원균뿐 아니라 정상 구성원도 피해를 보게 되는데, 세균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다. 얄궂게도 시디프는 다른 구성원들에 비해 항생제 내성이 강하다. 따라서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항생제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디프는 세를 더욱 불려 나간다. 경쟁자가 줄어들면서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되면 시디프가 생산하는 독소의 양도 그만큼 많아지므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비유컨대 시디프는 평소에는 다른 여러 유익균의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자처럼 행동하다가 어느 순간 그 수가 많아지면 조직폭력배 행세를 한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항생제는 치료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그나마 남아 있는 유익균들만 치명타를 입게 되고, 그럴수록 시디프의 위세는 커지기 때문이다.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정상 음식물 섭취가 어려운 환자에게 영양주사를 놓는 것처럼, 좋은 미생물을 대장에 직접 넣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현재 기술로 배양할 수 있는 미생물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의 1% 남짓이고, 배양한다고 하더라도 좋은 미생물을 선별해낼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기발한 대안이 ‘분변 미생물군 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FMT)’, 쉽게 말해서 ‘똥 이식’이다. 그러려면 치료용 ‘좋은 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워진 게 바로 ‘똥은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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