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기고(안동현 선생님)- “영광 영광 영광 세광 영원히 빛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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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승은 | 등록일 | 15.04.15 | 조회수 | 1142 |
“영광 영광 영광 세광 영원히 빛나리” 안동현 선생님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 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사라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만은 기억해 주는 게 좋아. 역사는 지울 수도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거야, 그건 당신이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중에 있는 이 말처럼 잊어버리려고 해도 또렷이 각인되어 잊혀 지지 않는 것이 있고, 꼭 기억하려고 해도 금방 잊어지는 것들도 있고 문득 생각나서 웃음 짓게 하는 기억들도 있는데 그중 학창시절의 기억은 각자의 마음속에 또렷한 영상으로 저장되어 남아있을 것입니다. 학창시절 교실은 수업 뿐 아니라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이자 놀이터이며 포근한 잠자리이자 쉼터이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나눠먹는 음식점이며 친구들과 장난치며 떠드는 즐거운 공간이기도 합니다. 변하는 계절감을 창밖에서 느낄 수 있는 학교 베란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찾아온 봄은 더디게만 느껴지고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찬 기운을 견디다보면 야구장 담장에 둘러선 미루나무 잎이 조금씩 초록색으로 물들고 망일산은 군데군데 하얀 산벚꽃과 싸리꽃이 피고 분홍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곳. 밤나무 숲에서 밤꽃이 피고 함께 날아온 밤꽃향기는 아는 사람만 아는 향기의 비밀이며 비 온 뒤나 웬만한 비에도 기어이 공을 차며 뛸 수 있는 학교 운동장. 모의고사나 시험 볼 때면 야구부의 구령 소리가 더 가깝게 들리고 족구장이 된 테니스 코트에서 마음껏 발을 높이 들어 킥을 할 수 있는 곳. 졸음을 쫒아가며 듣던 수업 시간에는 양쪽 교실의 선생님들 목청소리와 기가폰 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리고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때론 감미롭고 친근하기도 하고 우렁차게 복도를 울리며 하나의 사운드가 되어 시간 시간 흐르는 곳. 어떠니 저떠니 해도 점심시간에는 무리지어 질주하는 발소리가 바람을 일으키고 그렇게 한 층씩 계절 따라 올라가다보면 수능시험 보는 날이 되어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을 치르고 산란한 연어 알처럼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간 세광의 아들들. 출정식 때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하는 구령 소리와 함께 목청껏 부르는 세광 찬가는 그 순간 쩌렁쩌렁하게 온몸을 울리며 체내에 각인되고 무언가 하나로 결속된, 결코 끊을 수 없는, 마음으로 느끼는 뿌듯함과 소속감으로 비로소 세광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학창시절 잊을 수 없는 것은 선생님과 얽힌 에피소드 일 겁니다. 대성중학교 시절 쐬다마(쇠를 강하게 발음해야 맛이 나는) 선생님과 왕다마 선생님이 기억납니다. 어감에서 느껴지는 강한 인상. 한번 걸리면 죽음인 무언의 압력과 공포를 주는 위협적인 분들이셨죠. 그러나 그분들이 이렇게 기억나는 건 무지막지한 두려움을 추억으로 만들어주는 그분들의 진심어린 제자 사랑을 알기 때문일 겁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학창시절 얻어맞은 기억이 있을 텐데 그 순간의 두려움과 아픔이 있었기에 두고두고 이야기 되는 이유일 겁니다. “그땐 다 그렇게 살았어!”하는 말 속에는 갖가지 이야기들이 밤을 새워도 끊어지지 않는 흥미로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당시 주위의 사물들은 모두 우리의 몸을 가격하여 아픔을 주던 것들이었습니다. 출석부, 컵, 자, 빗자루, 봉걸레자루 그리고 칠판지우개와 분필은 주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던 것들이었고 졸릴 때 베고 자던 책이나 사전도 때로는 머리를 둔탁한 소리를 내며 잠을 깨웠던 도구들입니다. 세광의 긴 역사만큼 선생님들과의 다양한 추억들은 졸업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함께 이야기 나누며 확대 재생산되고 있겠지요. 그중 설화처럼 구비 전승되며 전설이 된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합니다. 세광 동산에 육, 해, 공군이 모두 있었는데 이제는 공군(fly)은 만기 제대했고 해군(anchovy)은 말년으로 제대를 앞두고 있으니 이제 육군(balbari) 홀로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며 세광 동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세광의 3대 불가사의로 남아 있는 것은 퇴직하신 김○구 선생님이 월남전 참전 용사였다는 것과 신○식(일명 멸치) 선생님이 공수부대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이○환(일명 마징가) 선생님이 장교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별명은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탄생의 신비성과 기막히게 일치하는 신체와 성격의 유사성으로 유구한 역사성을 지녔습니다. 쑝쑝과 꼴탁, 홍빵, 껀모,썬, 파리, 멸치, 마징가, 짱가, 꽁치, 오랑우탄 또는 짐승, 꼴통, 용광로, 다마내기(양파라고 하면 왠지 그 어감이 떨어지는), 가가멜과 스머프, 빼빼로가 있으며 스스로 붙인 영원한 천사님과 거성 물리, 멋쟁이, 제비, 김구라 등은 조금 더 술자리의 안주로 여러 번 언급되는 숙성기간을 거쳐야 할 별명들입니다. 졸업생들의 술자리에서 영원히 빠지지 않을 안주는 역시 미션 스쿨의 아이러니 세광사 주지이며 삼국지의 장비이고 수호지의 노지심인 김○환 선생님입니다. 스스로 머리를 깎고 그 수하로 들어간 젊은 중들은 엄청난 사운드의 고함과 가차 없는 빠따와 확인된 바 없지만 정력에 좋다는 발바닥 안마(?)를 받으며 성장해 세상으로 흩어져 빛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맞거나 얻어먹은 욕만큼 변치 않는 존경심을 가지고 여전히 그 휘하에서 복종하고 있으니 가히 연구 대상입니다. 그 불가사의함 때문에 주변에서는 화성인이라고도 하고 그 대단한 기억력으로는 스타킹에 출연해야 한다고 하고 주(酒)력과 체력은 그것이 알고 싶다나 PD수첩에서 다뤄야할 인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용광로 선생님의 열정은 특히 운동장에서 빛이 납니다. 모든 운동에 적극적이고 특히 축구장을 누비며 공을 몰던 모습과 그 나이에도 학생들 앞에서 덤블링을 보여준 유연함을 갖췄으며 한때 체육대회에서 순위에 들지 못한 해에는 학급 학생 모두를 학교에서부터 목련 공원까지 구보시킨 일은 지금도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용광로가 끓고 분출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 용광로 선생님도 지금 학생들은 1500cc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멋있는 용광로로 기억되겠지요. 옛날 세광동산에 5705 금색 레간자가 있었는데 그 차주는 금복주라고도 불리고 썬이라고도 불리는 선생님으로 그 차는 주차된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갖게 해서 야자를 도망가지 못했고 역시 아는 사람만 아는 일이지만 깜깜한 밤 그 차 앞에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던 제자들이 있었다는 사실. 특히 미국으로 유학 간 김○현이는 그 차와의 인연과 그때의 기억이 생각나 졸업 후 학교를 다시 찾아와 그날을 회상하며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으로 소래 시인으로 음반을 낸 트로트 가수이며 사이클로 전국을 누비는 비젼홀 주인인 김○석 목사님은 체육대회 때 유명한 아나운서고 운동장 조회 때는 말씀을 한글과 영어로 봉독하시고 구구절절 옳은 말씀으로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분으로 기억되는 선생님이며 목사님이십니다. 수업하실 때 각각 선생님들의 특징은 말소리와 어조나 억양과 변칙적 스타일로 매 순간마다 다양한 토크쇼를 보는 것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지면으로는 성대모사나 행동모사를 할 수 없으나 분명 누군가는 흉내를 내서 좌중을 폭소하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체육시간에 멀리 차 보낸 공을 찾으러 갔다가 운동장 밖 경사가 심한 배수로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지만 용케 턱만 살짝 다쳤던 이○희는 그래서 턱슬레이란 별명을 갖게 되었고 학교 4층 베란다에서 떨어져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던 연○환이는 떨어지자 마자 창피하다고 곧바로 일어나 4층까지 다시 뛰어올라왔고 가벼운 찰과상으로 치료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자습을 했으니 아마도 그 열정으로 의사가 되었을 겁니다. 수능 전날 평소에 하지 않던 축구를 저녁 먹고 나가서 하다가 발목이 부러져 119를 불러 후송하면서 “내가 왜 하필이면 축구를 해가지구!” 소리 질렀던 이○호. 그래서 병원에서 수능시험을 치렀지만 서울대에 당당히 합격했지요. 그렇게 이름 대신 부르던 학생들의 별명도 가지가지여서 노예, 멍게, 감자, 짝패, 큰 야오밍, 작은 야오밍, 딸기, 빽돼지, 니그로, 깜씨, 하마, 고릴라, 마빡, 송아지를 닮은 송치, 얼굴이 새까매서 붙은 간디는 한의사가 되었고 꼴통 짓을 많이 해서 야마라고 불린 파계승 이○종, 키가 작아서 쫌팽이, 맹구 흉내를 잘 내는 이○훈은 맹구, 뒤통수가 절벽이라 클리프, 만화영화 둘리에 나온 또치를 닮은 최○복이, 노예는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엄청난 신분상승(?)으로 어엿한 판사님이 되었고 똥개는 의사가 되었으며 왼손잡이라 짝배라고 불린 정○택이와 김○웅이는 각각 마취과와 재활의학과 의사이며 치대에 간 뺀찌나 의대에 간 돌팔이들 공대로 간 공돌이들은 교수가 되어 그곳에선 제법 존경받는 선생님들이지만 모교 선생님들 앞에선 여전히 별명으로 불리며 그때 그 시절 풋풋한 학생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처럼 무언가로 이름 붙여진 사람들은 그 존재감이 영원히 이어지는 신기함을 지녔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철학적인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 친근하게 기억되는 것은 나름의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별명 하나 없는 무색무취의 조용한 존재감보다는 그래도 뭔가로 기억되는 것은 나름의 관심과 사랑이 아닐까합니다. 늘 그곳에 가면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세광은 영원하고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언제나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 언제나 반겨주는 반가움과 사랑이 있는 곳 그곳은 세광이고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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