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 

2학년 손창연

완전한 ‘공허(空虛)’란 없다. 텅 비었다는 뜻은 그것 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우리는 우리가 ‘공허하다’라고 부르는 것들로부터 가치를 느끼고,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완전한 공허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을 떠나보낸 후 홀로 남은 시간을 견뎌야하는 한 여자가 이렇게 말한다.

“네가 있었던 곳에서 사라진 후에 내 생활은 너무 공허해”

이런 로맨틱한 대사에 진지함으로 대응해서 미안하다만, 이 사랑스러운 말은 논리를 무시한 괴변에 불과하다. 왜냐면 그녀는 지금 그리움으로 그 빈 공간을 한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완전한 공허함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적 풍요를 선사했다. 과거 조선을 장악하던 사대부 무리들도, 물론 대부분이 허례허식에 의거한 같잖은 가식에 불과했지만, 이러한 공허함의 가치를 알고 사군자에 ‘여백의 미’를 조합하여 정물화를 그리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그림들은 정말 정갈한 ‘동양의 미’를 아주 잘 드러내어 매우 가치 있는 유산으로 선정되곤 한다. 동양을 넘어서도 전 세계의 모든 역사 속엔 이 ‘불완전한 공허함’을 사랑한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번 ‘책 읽는 청주’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 또한, 이 불완전한 공허함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내용을 풀어나가고 있다. 책의 저자인 건축가 승효상씨는 여러 건축 사례를 통해서 건물의 공백에 대한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전 세계에 있는 곳곳의 공백의 미를 바라보며 독자들은 그 안에 담긴 철학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하나의 가치체계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책을 주제삼아 독서토론을 진행하며 나와 나의 팀원들은 함께 공백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공백이 갖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쉬운 예로, 로또는 우리가 그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소비자의 미래라는 공간이 복권 당첨의 가능성으로 가득한 불완전한 공백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답변 이외에도 다른 팀들의 답변은 정말 참신했다. 위에서 언급한 사군자도의 ‘여백의 미’를 발표했던 팀도 있었고, 화학의 오비탈의 개념을 언급하며 공백이라는 공간이 확률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발표한 팀도 있었다. 그 친구들의 수준 높은 창의성에 계속 감탄을 했던 것 같다.

1차 토론이 끝난 후, 우리는 청주 수암골의 재개발 건을 두고 논쟁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설정하고 각자 다양한 인물의 역할을 부여받아 역할토론을 수행했다. 나는 건축가 승효상씨의 역할을 맡아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장을 했다. 그가 책에서 언급했던 공간에 담긴 의미를 언급하며 재개발을 찬성하는 주장들을 열심히 맞받아쳤다. 그 과정 속에서 작가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이익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었다. 재개발을 통해서 얻는 이익보다 그 지역에 담겨진 역사와 주민들의 삶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이번 독서소모임 활동을 통해 책을 읽는다는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저 적혀진 문자를 머릿속에 따라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를 나의 가치관의 성장제로 활용하라는 독서 방법론은, 그저 눈으로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어서 우리는 책을 읽은 뒤 반드시 생각을 해야 한다. 작가에 대해, 주제에 대해, 이걸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에 대해 조금씩 고민하다 보면, 그 사이에 그 책은 이미 우리의 생각을 훌쩍 키워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