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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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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믿음(2016.06.20)
작성자 김종석 등록일 16.06.20 조회수 216

2015-06-20()-435-베드로전서 2:19-21-진정한 믿음

 

이번 한주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교직원들과 학생들에게 가득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현대사회는 과학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과학적 사고를 하지 않으면 큰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사회학이라고 부르던 학문을 사회과학이라고 고쳐 부르면서, 과학의 영역을 자연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까지 확대하였고, 그 해결책 또한 과학적 방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문학은 인문과학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시다시피 과학은 인과 관계 즉 원인과 결과라는 원리와 법칙에 대해 설명합니다. 어떤 결과는 반드시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대단히 믿을만하고 합리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거의 수긍할 만큼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인문학은 과학이라는 용어를 붙이지 못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일에는 딱히 원인과 결과로 한정할 수 있는 것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소설가들과 희극작가들은 인생의 원칙을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으로 한정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기는 했지만,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으로 가는 행로나 방법이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해서 이것 또한 대단히 어려운 난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우리 인생의 원리를 인과응보 즉, 원인과 결과로의 범주로만 이해하려 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인생의 다양한 면들을 해석해 내지 못하고 물음표만 던지고 말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선진들이 인과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인생의 일 때문에 얼마나 고민하고 토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질문했는지 모릅니다. 왜 의인이 고난을 받으며, 왜 악인이 형통하는지 질문하는 대목이 너무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인문학에서는 인과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역설과 모순의 논리로 해석해 내기도 하지요.

오늘 베드로 사도 또한 의인이 부당하게 고난을 받는 현실을,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은 일에 비유하면서, 비록 부당하게 고난을 받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과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생의 수많은 일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의로움을 믿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적 사고에 매몰되어 인생의 일들을 인과의 법칙으로만 해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헌금하면 그 이상의 소득이 들어와야 하고, 잘못하지 않으면 고난을 받지 않으리라고 예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선하고 의로운 중에 고난을 받았고, 대답이 없는 기도를 드렸으며. 반대급부가 없는 희생을 신앙의 힘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인과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생의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진리를 향해 걸어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믿음임을 베드로 사도가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과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실히 믿고 진리를 따라 걸어가는 귀하고 복된 한주간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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