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수기(2015년 EBS 제왕 서장원): 서로를 이끄는 멘토-멘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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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승은 | 등록일 | 15.05.19 | 조회수 | 1216 |
서로를 이끄는 멘토-멘티
3월 말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저한테 우편물이 왔다며, 행정실에 찾아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웬일인가, 싶어서 행정실에 가보니, 제 앞으로 편지가 하나 와 있었습니다. 받는 사람은 분명 저인데, 보내는 사람 칸에는 처음 보는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행정실을 나오며 궁금함을 참지 못해 바로 편지를 뜯어보았습니다. 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용인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김용준 어린이였습니다. 편지에는 자신이 장학퀴즈를 통해 저를 알게 되었으며, 제가 인터뷰하고 또 문제를 맞히는 것을 보고 저를 존경하게 되었고, 꼭 연락해 준다면 좋겠다는 내용이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쓰여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고 난 순간, 저는 기쁘기도 하고, 또 당황스럽기도 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잠깐 얼떨떨해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살펴보니 이미 2주 전에 쓰인 편지였습니다. 아뿔싸. 저에게 편지를 보낸 용준이란 아이는 분명 답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답장을 보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편지에는 용준이와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저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도 않았고, 또 제가 말을 잘못해서 혹시라도 실망시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해서 편지로 답장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앞의 이유뿐만 아니라 마음을 담은 편지가 얼마나 상대방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지 경험을 통해 느껴봤기 때문에, 편지를 쓰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편지를 써 준 정성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저도 정성을 담아 편지를 쓴 후 그 편지가 온 주소로 편지를 부쳤습니다. 그 후 몇 주 동안은 그 여운이 남아 행복한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5월 8일 오후, 저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국어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선생님께서 저를 교실 밖으로 부르셨습니다.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떤 초등학생이 널 보려고 찾아와서 지금 기다리고 있어!” “네??? 진짜요?” 예전에 편지를 받았었고, 또 답장을 보내 주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그 용준이구나! 저는 일단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다잡고, 한편으로는 ‘용준이를 만날 수 있구나!’ 하는 기대와,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말을 하지? 실망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을 가지고 용준이가 기다리고 있는 3학년 교무실 옆 휴게실로 들어갔습니다. 정말로 용준이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용준이의 부모님께서도 함께 계셨습니다. 모두 저를 보더니 굉장히 반가워하였습니다. 용준이의 부모님께서는 용준이가 장학퀴즈를 보면서 저를 많이 응원해 주었고, 또 방송을 몇 번씩이나 돌려보기도 했다고 하시며, 꼭 만나고 싶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약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선생님들도 이 상황이 신기하셨는지 오셔서 함께 이야기하고 가시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처음인지라 약간 긴장한 상태였는데, 이곳으로 찾아온 용준이는 저를 보고 완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작별해야 할 시간이 오자, 저는 부끄럽지만 기념사진(??)도 같이 찍고 또 그 때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공책에 연예인이라면 싸인이 되었을, 아무튼 그런 것도 써 주었습니다. 물론 저는 싸인이 있을 리가 없으니, 용준이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는 메시지를 적어 주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헤어지며 다음에 제가 대학교에 가면 또 만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헤어지고 난 후 며칠간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초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일 같기도, 또 오래 전 일 같기도 한데, 그런데, 지금은 훌쩍 커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한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의 존경을 받게 되다니. ‘나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제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젠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 어린이가 본받을 수 있는 어른으로 행동해야겠구나 하는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과연 그 아이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용준이가 본 것은 ‘장학퀴즈’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고 문제를 맞히는 저의 모습의 일부일 뿐이었습니다. 용준이가 실제의 저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저를 그때도 지금처럼 대할 수 있을까요? 어떤 면을 보이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이 특별한 ‘이벤트’는 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 이벤트가 인연이 되어, 저에게는 소중한 멘티가, 또 제가 이런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용준이에게는 좋은(?) 멘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 소중한 인연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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