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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겨루기 대회 대상- 2학년 부문(2학년 노태정)
작성자 이승은 등록일 16.06.13 조회수 794


 모두를 위한 유토피아를 꿈꾸다
- <유토피아>를 읽고 -

2학년  노태정


 우리의 삶 속에는 항상 어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들은 지구 곳곳에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나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큰 규모의 자연재해, 눈앞에 닥쳐오는 환경오염 문제, 날이 갈수록 더욱 교묘해지고 잔인해지는 범죄,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 문제 등이 넘쳐나는 현실에 문제가 있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인 이상향은 없을까 생각하게 되고,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욕망을 반영한 세계가 유토피아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현실이 이데아의 세계를 끊임없이 모방하면서 발전하지만, 결코 이데아라는 이상적이고 초월적인 세계에 도달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공통된 욕망이 합리적인 근거와 절차에 따라 이로운 쪽으로 구체화된다면 유토피아의 세상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꿈을 꾸어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쓴 토마스 모어는 먼저 사유재산을 없애려 하였다. 10년에 한 번씩 추첨으로 집을 바꾸자고 하였고, 주민들은 같은 모양의 옷을 입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에 6시간만 노동을 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의 취미활동에 주력을 한다고 하였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사람들이 여유가 생겨서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사람들의 물질적인 욕구가 줄어들어 더 많은 돈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경제적 유인이 사라지게 되니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다.
 또한, 사람들의 타락을 방지를 위해서 술집을 없애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우습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도덕적 타락을 걱정하여 자유를 배제하고 획일화하는 것이 어떻게 유토피아일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었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도 과학 기술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가 제시되어 있었다. 고통과 노화, 무질서 등을 사회가 통제하여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모습이 실제로는 인간의 의지를 구속시키고 자유로운 생각의 가능성을 소멸시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안락사에 대해서 관대한 생각도 볼 수 있었다. 앞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들에게는 자신 스스로 고통 없이 죽을 자유를 허용했다고 하니, 요즘 논란이 많은 안락사 시행에 대해 그 때 이미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 또한,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에 서로가 나체를 보임으로써 옷 속에 가려진 사람의 실제적인 모습을 보고 결혼 상대방을 고르도록 했다는 부분에서 단순히 사람을 눈앞에 보이는 얼굴로만 평가하는 태도를 버리고, 장식으로 인해 꾸며지는 부분을 없애려고 한 그의 생각은 다소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전쟁, 처벌, 종교 등에 대해 그가 제시한 이상적인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나는 유토피아를 읽고 배워야할 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그 중 첫 번째는 물질 만능주의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을 통해 문명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이를 동기로 삼아 노력을 할 수 있지만, 물질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질로 세상을 판단하고 살아갈 때, 유토피아에서 말한 것처럼 사물이나 사람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정신적으로 생각하고 답을 내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필요한데, 물질에 대한 탐욕과 집착은 이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개인이 아닌 모두가 잘 사는 세상에 대한 고민과 이에 대한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영국은 기술과 자본주의의 발달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문제점으로 아이들의 노동 착취와 빈민 계층이 늘어났고, 이로 인한 빈부격차가 심각했다. 자본주의를 통해 소수가 부를 취하고, 이를 통해 사회가 발전할 수도 있지만, ‘공유지의 비극’처럼 결국 부의 독점과 인간 소외는 모두에게 돌아올 수 있는 부메랑과도 같다. 그러한 일들은 이미 유토피아 1부에서 말한 18세기 영국에서부터 지금까지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좀 더 나은 세상을 함께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전부터 토마스 모어뿐만이 아니라 베이컨 등의 서양 철학자와 공자와 노자 등 동양 철학자들처럼 동서양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상사회를 꿈꿔왔다. 앞으로도 이 세상이 안정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전까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욕망으로부터 예전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앞으로도 더 좋은 세상을 향한 꿈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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